더 잘 보기 위해 높은 데로 올라간다.
해발 478m, 고속 승강기를 타니 1분 뒤 빌딩 전망대에 닿는다. 서울 잠실 롯데월드타워 118층, 여기서 사진 전시가 열리고 있다. 사진가 한영수(1933~1999)가 촬영한 1950년대 서울 풍경이 지하 2층 전시장부터 펼쳐지는데 백미는 꼭대기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세계 최고층 유리 바닥 전망대(스카이덱) 벽면이 한 장의 거대한 흑백사진으로 덮여있다. 1958년 한강변에서 물놀이하는 사람들을 담은 ‘서울 뚝섬’ 사진이다. 롯데월드 관계자는 “지금의 서울 전경을 가장 확실히 조망할 수 있는 장소에 과거 서울의 모습을 불러냈다”고 설명했다.
이 초고층 전망대가 전시장으로 사용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정면에는 과거, 발밑으로는 현재의 잠실 일대가 총천연색으로 내려다보여 시간의 관통을 체험케 하는 특수 공간을 활용한 것이다. 내년 2월까지 열리는 전시 제목을 ‘시간, 하늘에 그리다’로 잡은 이유이기도 하다. 이곳을 세 번 찾았다는 미국인 헤일리 램지(21)씨는 “옛 풍경과 컬러풀한 현재가 한눈에 대비돼 인상적”이라고 말했다. 다만 약간의 용기는 필요하다. “심장이 약하거나 고소공포증 있는 손님은 이용 시 주의” 안내문이 붙어있다.
미술이 상공(上空)을 향하고 있다. 높이 264m, 서울 여의도 63빌딩 맨 위층에서는 스웨덴 사진작가 에리크 요한손(36) 개인전이 16일부터 내년 3월까지 열린다. 벽면엔 몽환적 연출로 인기가 높은 초현실 사진, 반대편 63아트 미술관 유리창 바깥으로는 탁 트인 여의도 일대가 시야를 장악한다. 관람과 휴식이 동시에 가능한 셈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다른 시각”이라는 작가의 철학과도 궤를 함께한다.
서울 너머에도 마천루는 즐비하다. 193m, 대전신세계백화점 엑스포타워 42층 전망대에 미술 전시장 디아트스페이스193이 지난 13일 개관했고, 이를 기념해 세계적 설치미술가 올라푸르 엘리아손(54)의 상설 특별전이 열린다. 전시 제목(‘살아있는 전망대, 2021’)처럼, 매일 아침 저녁 전시장으로 쏟아지는 빛이 창문의 시트지(紙)와 커튼, 특수 편광 패널로 제작된 7점의 구형(球形) 조형물을 관통하며 내부 전체의 색채와 분위기를 시시각각 바꿔내는 콘셉트다. 미술관팀 오명란 큐레이터는 “사면이 개방된 전망대라는 특수성을 고려한 공간 특정적 작품”이라며 “장소 자체가 미적 경험이 되도록 신경 썼다”고 말했다.
해발 400m, 해운대 엘시티 랜드마크타워 100층 아트 갤러리에서는 미국 그라피티 화가 존원(58)의 그림 전시가 11월까지 진행된다. 대개 미술 전시는 수평 이동 중심이지만, 고층에 자리한 전시장은 수직의 경험을 제공한다. 높이의 변화는 일종의 체험으로 전환된다. 몸이 고도(高度)를 달리하는 과정도 일상을 벗어나는 전시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장준석 미술평론가는 “공간이 주는 재미 역시 미술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는 방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