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팔의 무수한 궤적이 날개를 닮아있다.
국내 1세대 행위예술가로 불리는 화가 이건용(79)씨는 캔버스를 마주 보는 대신, 캔버스를 등지거나 아예 캔버스 뒤에서 팔만 뻗어 붓질하는 황당한 방식으로 화가의 ‘신체성’을 화폭에 드러내며 거장의 반열에 올랐다. 최근 완성한 그림 ‘Bodyscape 76-9-2021′ 역시 양손에 붓을 쥔 채 캔버스를 등지고 서서 접촉 가능한 한계 범위까지 위아래로 흔들어댄 결과다. 화가는 “의식이 아닌 신체가 평면을 지각하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화면을 보지 않고 그린다는 것, 그의 작업은 상식을 거부하는 것에서 비롯한다. 화면을 눈으로 보면서 생각을 손으로 옮기는 전통적 회화 방법론을 전복해 ‘그린다’는 의미를 재설정한다. “물감과 화면과 행위라는 회화의 가장 원초적인 요소만 남겼다. 회화 내부가 아니라 바깥의 시점을 보여주고 싶었다.” 1973년 파리 비엔날레 한국 대표로 참석한 이후 이 같은 “미친 짓”을 지속해왔다. 그의 바둥거림이 날갯짓처럼 보이는 이유일 것이다.
말년에 대단한 인기를 누리는 중이다. 경매 시장뿐 아니라, 내년 미국 구겐하임미술관 전시에 한국 전위 예술 대표 작가로 참여하는 등 이름값이 날로 상승하고 있다. 서울 사간동 갤러리현대에서 31일까지 열리는 이번 개인전 출품작 50여 점도 개막과 동시에 날개 돋친 듯 대부분 팔려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