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든, 나이 들어도 늙지 않는다. 움직이는 한 매일이 신작(新作)이기 때문이다. 사진가 박영숙(80), 화가 곽훈(80). 여든의 동갑내기 두 작가가 연달아 ‘이중섭미술상’ 수상기념전을 서울 조선일보미술관에서 연다. 지난해 코로나 사태로 수상기념전이 이월되면서 최초의 릴레이 전시가 성사됐다. 80년 세월이 응집된 엄선작이 대거 공개된다.
◇박영숙… “20대 촬영작 보니 사진은 내 운명”
“내가 이런 사진도 찍었구나, 사진을 안 할 수가 없었겠구나….”
제32회 ‘이중섭미술상’ 수상자인 사진가 박영숙씨는 최근 자신의 초기작을 돌아보고는 이렇게 말했다. 2023년 들어설 서울사진미술관에 그의 1960년대 ‘시와 사진’ 연작이 소장품으로 선정됐기 때문이다. “1964년 잡지 ‘여상’에 사진기자로 들어가 찍은 사진인데 당대 남성 사진가들과는 시선의 결이 다르다더라.” 시를 읽은 뒤 느낀 감정을 김금지·서우림 등 훗날 배우가 된 친구들을 모델로 세워 표현한 흑백 사진이다. “20대 중반, 거의 아기 때 촬영한 사진인데 귀퉁이 하나 잘라내지 않고 풀 프레임으로 재인화했음에도 썩 괜찮더라.”
20일부터 29일까지 열리는 ‘이중섭미술상’ 수상기념전에서 박씨는 이 작품을 55년 만에 꺼내 보인다. “1966년 첫 개인전 이후 처음 선보인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대표작 ‘미친년 프로젝트’ 등 “생애를 아우르는 흐름”을 보여줄 예정이다. “대학에서 사학을 공부했고, 기자도 했고, 풍경에서 사회를 해석하는 재주가 있는 것 같다. 주제를 커다랗게 제시하는 표현 방식이 사진이라는 장르와 잘 맞았다.”
1세대 페미니즘 사진가를 대표한다. 억압받던 여성을 ‘마녀’라는 피사체로 구현하는 특유의 연출 역시 “하나의 프레임은 하나의 센텐스”라는 그의 사진관(觀)을 보여준다. 이번 전시는 제주도 곶자왈에서 과거 마녀의 흔적을 추적하는 ‘그림자의 눈물’ 연작까지 아우른다. “코로나 탓에 이동의 제약이 생겨 지난해부터 작업이 중단”됐지만, 최근 영국 코벤트리대학교 ‘한국의 날 축제’ 미술 기획전에 초청되는 등 다시 시동을 걸고 있다. 마녀가 움직인다.
◇곽훈… “실력 증명하고자 최신작으로 채워”
백발의 화가는 “긴장된다”고 말했다. “그동안 뭘 했는지 평가받는 자리 아닌가. 터지는 게 야유일지 박수일지 궁금하다.”
올해 제33회 ‘이중섭미술상’ 수상자로 선정된 곽훈씨가 이후 매일같이 작업하며 전부 신작으로만 전시장을 채우는 이유다. “드로잉만 200점, 유화는 40점 넘게 그렸다. 내가 가진 거 다 쏟았다. 지금도 그리고 있다.” 그는 캔버스 300호(300x200㎝) 크기 대작도 3~4개 준비했다. “1975년 미국으로 떠나 한국 바깥에서 오래 생활했다. 계파도 없고, 상(賞)과도 거리가 멀었다. 늦게나마 고국에서 인정받았으니 작품으로 증명하고 싶다.” 수상기념전은 11월 4일부터 14일까지 열린다.
4년 전부터 원시적 고래 사냥의 순간을 그린 샤머니즘적 회화 연작(‘Halaayt·할라잇’)을 그리고 있다. 이번 전시 출품작도 모두 ‘할라잇’이다. “이누이트가 생존을 위해 자연에 도전하는 장면이다. 해도 안 뜨는 추위 속에서, 망망대해라는 가장 극한의 상황에서 괴물 같은 고래를 향해 나아간다. 잡으면 살고 못 잡으면 죽는 것이다. 요즘 우리 사회가 의기소침해 있다. 그림을 통해 처절하게 응집된 인간의 힘을 전달하고 싶다.”
곽훈의 작가론(論)을 집필 중인 올리비에 들라발라드(54) 프랑스 도멘 드 케르게넥미술관장이 방한해 이번 전시 큐레이터를 맡기로 했다. 5년 전 단색화 전시도 개최했던 지한파 미술인이다. “화실에 오는 모든 사람들에게 묻곤 한다. 내 옛 그림이 좋으냐, 요새 그림이 좋으냐. 항상 최신작이 낫다는 평가를 받고 싶다. 지금까지는 다들 신작이 좋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