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뭐지?”
최근 화가 이인성(1912~1950)의 그림 ‘다알리아’를 두고 미술계가 수군대고 있다. 이 그림은 지난 4월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돼 서울관에서 전시 중인 ‘이건희 컬렉션’ 중 하나지만, 전시 도중 그림에서 출처를 알 수 없는 희한한 서명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그림 하단 중앙에는 이인성의 서명 대신 검은 붓으로 쓴 알파벳 ‘son’으로 추정되는 영문 글씨가 적혀있다.
‘다알리아’는 이인성 탄생 100주년이던 지난 2012년에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전시된 바 있지만 ‘서명 논란’이 불거진 건 이번이 처음이다. 국립현대미술관 측은 최근 전시장에 방문한 전문가들의 지적으로 최근에야 이 사실을 파악했다. 미술관 관계자는 “2012년 당시 외부 위원들을 초빙해 진위(眞僞) 문제를 검증했다”며 “이인성의 작품이 틀림없다”고 했다. 이 그림은 올해 초 한국화랑협회 감정위원회에서도 진품 판정을 받았지만, 한 감정위원은 “이인성 그림에서 이런 서명은 처음 본다”며 “권위자들이 진품으로 인정하긴 했으나 후속 연구가 꼭 필요한 그림”이라고 말했다.
이 그림은 한국 서양화의 단초를 마련한 화가의 말년작(1949)답게 풍요로운 색채로 다알리아 꽃이 핀 어느 마당을 묘사했다. 취재 과정에서 “1970년대 말 로비스트 박동선씨가 구매했던 작품”이라거나 “그림 속 항아리 등의 터치가 조금 어색하다” “화가 손일봉(1907~1985)의 서명과 유사하나 화풍이 다르다” 등의 여러 증언과 분석이 나왔지만 누구도 서명에 대한 속 시원한 답은 내놓지 못했다. 윤범모 관장 역시 “화가 사후 지인들이 그림에 서명을 대신 하곤했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었다”면서도 서명의 출처와 의미는 설명하지 못했다. 문제는 국립미술관이 이 같은 중대한 미스터리를 파악했음에도 관련 연구를 진행하는 대신 대외적인 소란이 생길까 쉬쉬하는 분위기라는 점이다. 본지 취재가 시작되자 미술관 측은 “연구를 검토하겠다”고 했다.
한국 근현대미술품이 대개 그렇듯 이인성의 그림도 진위 시비가 잦은 편이다. 이인성의 고향인 대구(대구미술관)에도 최근 ‘이건희 컬렉션’에 포함된 이인성 그림이 기증·전시됐고, 이 중에도 구설에 오른 문제적 작품(’정물’)이 있었다. 이 그림에도 이인성의 서명은 없다. 최은주 대구미술관장은 “‘이 그림은 진짜’라는 주장만 반복하는 대신 예산을 확보해 학술적인 연구와 검증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