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쌍의 건어(乾魚)가 미술관에서 매혹적인 향을 흘린다. 굴비와 청어. 국민 화가 박수근(1914~1965), 또 다른 의미의 국민 화가 빈센트 반 고흐(1853~1890)가 유화로 그려내 선물한 물고기가 서울과 파리에서 전시되고 있다. 잘 마른 생선, 사연이 꾸덕꾸덕하다.
◇결혼식장으로 간 굴비
평생 가난하고 따뜻했던 화가 박수근의 그림을 가장 많이 취급한 곳이 서울 반도화랑이었다. 박수근은 당시 화랑 직원으로 일하던 박명자 현(現) 갤러리현대 회장에게 곧잘 “미스 박 시집갈 때 꼭 그림 한 점 선물하겠다”고 말하곤 했다. 그러나 박수근은 결혼 소식을 듣지 못하고 급히 세상을 떴다. 별세 이듬해 박 회장의 결혼식장에 박수근의 부인 김복순 여사가 보따리를 들고 찾아왔다. 풀어보니 ‘굴비’ 그림이었다. 1962년 한 폭의 작은 하드보드지에 완성한 굴비 두 마리가 특유의 두꺼운 질감처럼 그림 속에서 몸을 겹친 채 누워있다.
박 회장은 “과거엔 생일상에나 오르던 귀한 생선이니 부부가 잘 먹고 잘 살라는 의미 아니었을까”라고 말했다. 이후 박수근의 작품을 찾는 손님이 있어 이 그림을 1970년 약 2만5000원에 판매했고 뒤늦게 후회했다. “죄스러웠다”고 했다. 값은 매년 폭등했다. 30년 뒤 약 2억5000만원에 되샀고, 2004년 강원도 박수근미술관에 기증했다. 이 뜻깊은 굴비가 국립현대미술관 첫 박수근 회고전에 잠시 모습을 드러냈다. 내년 3월 1일까지.
◇언어유희 혹은 화가의 기백
1889년 화가 폴 시냐크는 친구 고흐를 찾아 프랑스 아를에 방문한다. 고흐가 자신의 귀를 자르고 정신병원에 강제 수용된 시절이었다. 자해 사건 이후 고흐는 헌병들과 자주 마찰을 빚었고,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헌병과 연루되는 일에 대해 “말벌 둥지에 손을 넣는 것 같다”고 쓰기도 했다.
시냐크가 병원에 오자, 고흐는 자신의 신작을 보여주기 위해 집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헌병들은 처음엔 거부하지만, 계속된 요구에 결국 두 손을 들었다. 옥신각신 끝에 방문을 열고 들어간 고흐는 헌병들 앞에서 “기념품으로” 접시에 놓인 한 쌍의 훈제 청어 그림을 친구에게 건넨다. 훈제 청어(gendarme)는 불어로 헌병이라는 뜻도 지닌다. 말라비틀어진 물고기가 이들을 향한 조롱이기도 했던 것이다. 시냐크는 1935년 숨을 거둘 때까지 그림을 간직했고, 이후 딸에게 물려줬다. 프랑스 오르세미술관 ‘폴 시냐크 컬렉션’ 전시에서 볼 수 있다. 내년 2월 13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