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반(反)체제 예술가로 유명한 아이웨이웨이(艾未未·64)는 어릴 적 일종의 분서갱유를 경험했다. 문화대혁명 당시였다. 프랑스 유학까지 다녀온 지식인 아버지가 1958년 공산당을 비판한 혐의로 우익으로 몰렸다. 거주지였던 베이징에서 신장(新疆) 지역으로 하방(下放)됐고, 18년간 공중변소 청소 노역을 했다. 식자가 탄압받던 시절, 동네 꼬마들은 “인민의 적”이라며 부친에게 돌을 던졌다. “나는 아버지를 도와 집안의 예술품을 모두 불태워야 했다. 가족들이 더 이상의 피해를 입어선 안 됐으니까. 그리고 동시에 예술의 중요성을 알게 됐다.” 아이웨이웨이가 본지 인터뷰에서 말했다.
10일 ‘세계 인권 선언 기념일’을 맞아 아이는 서울 한복판에서 인권과 표현의 자유를 호소했다. 2021년을 상징하는 20시 21분, 삼성동 코엑스 전광판에서 신작 영상 작품을 공개한 것이다. 그의 첫 서울 회고전을 개최하는 국립현대미술관과 영국 CIRCA가 공동 진행한 프로젝트로, 세계 최초이자 이날 단 하루만 상영된 깜짝쇼였다. 최근 진행한 원격 인터뷰에서 작가는 “인권은 피해받지 않을 권리를 포함하는 개인의 가장 기본적인 본질”이라며 “인간의 본성을 정의하고 인간에게 가치를 부여하는 자질”이라고 말했다. 중국 측의 탄압을 피해 해외에서 활동하는 작가지만, 인터뷰 답변은 중국어로 했다.
이번에 선보인 10분짜리 영상 ‘책은 스스로 불탄다’는 그가 주로 천착해 온 인권과 표현의 자유를 주제로 품고 있다. 올해 출간한 자신의 회고록 ‘1000년의 기쁨과 슬픔’을 아들 아이라오(12)와 함께 야외에서 불태우는 짧은 영상이다. 아버지 세대의 유산과 자신의 평범하지 않은 삶의 이야기를 돌아보는 책, 스스로를 집대성한 기록들을 지난 세기에 본인이 그러했듯 아들과 함께 불태움으로써 과거를 추모하는 것이다. “내 회고록을 불태움으로써 아버지가 잃고 얻었던 모든 것을 가슴 아프게 추모하는 행위다.”
인권은 모국의 가장 아픈 부위이고, 그는 그곳을 끊임없이 건드려왔다. 검열에 맞서 인터넷 자유 수호 운동을 주도했으며 예술구역(藝術區) 강제 철거에 항의해 톈안먼 운동 이후 베이징에서 처음으로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여권까지 압수당했던 그는 4년 만에 여권을 돌려받은 직후인 2015년 독일로 떠났고, 현재는 영국에 머물고 있다. 정작 그는 “나는 정치적 견해를 발설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다만 냉정하게 사회를 바라보고 공정함을 위해 싸운다. 이런 문제가 중국에만 존재하는 건 아니다. 민주주의 체제로 간주되는 국가에서도 재앙을 막기 위해 그래야 할 책임이 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메인 스타디움 설계에 참여했지만 당국의 정치범 구금 및 감시를 비판하는 퍼포먼스 등을 벌이며 불순분자로 낙인찍혔다. 중국은 내년 겨울 베이징에서 또 한 번의 올림픽을 준비하고 있고, 미국·영국·캐나다 등 국제 사회는 신장 위구르 지역의 인권 탄압을 이유로 외교적 보이콧을 선언하고 나섰다. 그러나 아이는 신중한 의견을 내놨다. “중국에 있는 다국적기업의 개입(스폰)을 줄이는 대신 보이콧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들의 투자가 올림픽 참가보다 명백히 더 큰 해를 끼친다. 그러므로 나는 이 국가들의 제스처가 ‘방 안의 코끼리’를 가리키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방 안의 코끼리는 모두가 잘못됐다는 걸 알면서도 쉽사리 꺼내지 못하는 진짜 문제를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