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딜런 2020년작 'Typist'(108.7x169.6㎝) /핼시언갤러리

뭔가를 쓰려면 먼저 혼자가 돼야 한다.

낡은 호텔 방, 한 남자가 작은 책상에 놓인 타자기 앞에 앉아있다. 벽을 마주한 손가락이 단어를 찾고 있다. 짐은 보이지 않는다. 머릿속에 있기 때문이다. 유명 가수이며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 밥 딜런(80)은 쓴다는 행위의 외로운 동작을 그림으로 남겼다. 그는 또한 화가이기 때문이다. 이 그림 ‘Typist’가 전시된 영국 런던 핼시언갤러리(내년 1월) 뿐 아니라, 미국 마이애미 프로스트미술관에서도 내년 4월까지 밥 딜런의 개인전이 열린다.

이 그림은 영화 속 한 장면을 화폭으로 옮겨온 ‘Deep Focus’ 연작 중 하나이고, 영화 ‘바톤 핑크’(1991) 주인공 극작가가 목돈을 벌기 위해 할리우드 영화 시나리오 집필 차 묵고 있는 싸구려 호텔이 배경이다. 보통 사람의 평범한 애환을 예술로 각색해 무대에 올려왔던 주인공은 그러나 이제 제작자 입맛에 맞는 B급 프로레슬링 영화 대본을 갖다바쳐야 한다. 심지어 황당한 살인 사건까지 겪고도. 밥 딜런은 “각자가 처한 곤경을 강조하는 그림”이라며 “삶은 모든 형태와 방식으로 당신에게 다가온다”고 설명했다.

이야기는 1940년대를 배경으로 삼지만 대중성을 벗어나는 글쓰기가 더는 고결함으로 여겨지지 않는 현실이 지금과 다르지 않다. “젠장, 여기서 아무 데나 돌을 던지면 작가가 맞을 거야.” 영화 속 대사처럼 작가로 넘쳐나는 시대, 그럼에도 혼자서 밤새 쓴다. 동 틀 때까지 타자(他者)를 타자로 쳐 내려간다. 그림 속 남자가 작가의 자화상처럼 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