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이 다시 들어왔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 놓인 ‘다다익선’이 지난 17일부터 시험 가동에 착수했다. 미디어아트 거장 백남준(1932~2006)의 최대 규모 작품으로, 1998년 브라운관 TV 1003대를 쌓아 올린 거대한 탑이다. 잦은 수리를 반복하다 2018년 전면적인 보존·복원을 위해 가동을 중단했다. 문제는 노후화로 작동하지 않는 브라운관 TV 교체였다. 단종된 지 오래라 아프리카 중고상까지 뒤져도 씨가 마른 상태였기 때문이다. 미술관 측은 숙고 끝에 고장 난 브라운관 TV 대신 LCD 평면 모니터(268대)를 새로 제작해 끼워넣었다. 21세기 ‘다다익선’이 탄생한 것이다. “상영되는 8가지 영상도 디지털로 변환·복원해 거의 영구적인 보존을 도모했다”며 “올해 백남준 탄생 90주년을 맞아 하반기 정상 재가동을 목표로 한다”고 밝혔다.
‘다다익선’의 거대한 빛과 함께 백남준을 기리는 잔치가 1년 내내 잇따른다. 그가 1977년 발표했던 LP 음반 제목(’나의 축제는 거칠 것이 없어라’)처럼 전국이 들썩이는 것이다. ‘백남준의 집’으로 불리는 경기도 백남준아트센터가 포문을 연다. 백남준의 기일인 29일, 백남준의 비디오 작품을 분류·정리해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 ‘백남준의 비디오 서재’로 무료 공개하는 것이다. 3월 첫 전시에서는 백남준 예술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열 가지 순간을 되짚으며 2000년 미국 구겐하임미술관 회고전 출품작 ‘삼원소’ 및 1993년 베네치아비엔날레 출품작 ‘칭기즈 칸의 복권’ 등을 다시 선보인다.
특별한 퍼포먼스도 준비됐다. 백남준이 직접 그린 악보 ‘20개의 방을 위한 교향곡’(1961)을 국내 최초로 시연하는 전시가 3월부터 6월까지 열린다. 고인의 생전에 연주되지 못한 이 곡을 국내 예술가들을 연주자로 초청해 전시 형태로 선보이는 자리다. 이 악보는 오선지에 그려진 음표가 아니라, 백남준이 그림과 영어로 작성한 일종의 암호다. ‘이탈리아 소녀의 기도 소리’같은 지시문을 해석해 음향으로 구현하고, 관람객에게 소음을 내도록 하는 등 참여 유도를 통해 백남준의 미완(未完)을 완성하는 것이다. 7월 20~24일에는 배우 황석정이 출연해 백남준의 동료 첼리스트 샬럿 무어먼의 삶과 예술에 대한 1인극을 벌인다. 센터 측은 “모두가 함께 즐기는 축제의 장이 되도록 준비했다”고 밝혔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는 ‘백남준 탄생 90주년 기념전–서울 랩소디’가 11월부터 열린다. 독특한 점은 백남준의 ‘글쓰기’에 주목해 그가 남긴 미디어아트의 시적 속성을 조명한다는 점이다. 미술관 측은 “특유의 다매체적 특성을 통해 현대시와 연결되는 백남준의 새로운 면모를 살필 계획”이라고 했다. 이 밖에 이달 초 개관한 울산시립미술관은 백남준 대표작 ‘거북’(1993) ‘케이지의 숲, 숲의 계시’(1994) 등을 소개하고, 서울 KS갤러리 등 화랑가에서도 백남준 관련 전시가 줄을 잇는다.
해외에서도 백남준은 뜨겁다. 영화 ‘미나리’의 배우 스티븐 연이 총괄 프로듀서로 참여하는 백남준 다큐멘터리가 제작되는 것이다. 미국 연예 매체 버라이어티 보도에 따르면, 미공개 영상 및 기록 자료와 함께 데이비드 보위·오노 요코·존 케이지·앤디 워홀 등 거장들이 회고하는 백남준 이야기가 포함될 예정이다. 제작진이 최근 촬영 차 한국을 다녀간 것으로 확인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