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 텐트…?”
17일 오전, 서울 평창동의 한 갤러리 직원들은 아연실색했다. 갤러리 앞에 난데없는 캠핑용 텐트가 긴 대열을 이루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날 아침 전시 개막과 동시에 먼저 그림을 사려고 전날 밤부터 ‘밤샘 원정’에 나선 사람들이었다. 갤러리 측은 “이런 광경은 처음”이라며 “미술 시장 과열을 보여주는 단면 같다”고 했다. 그림 구매에 성공한 한 30대 여성은 “어젯밤 11시부터 줄을 섰다”고 말했다.
해당 전시는 평창동 프린트베이커리에서 열린 국내 신진 화가 청신(41)의 개인전이었다. 미술계에 잘 알려진 유명 작가가 아닌 데다, 보통은 갤러리 측이 개막 전에 기존 고객에게 연락을 돌려 예약 판매를 진행하기에 미리 줄까지 설 이유가 사실상 없다. 그러나 최근 미술 시장의 신규 세력으로 등장한 젊은 세대로 인해 흐름이 바뀌고 있다. 갤러리 관계자는 “요즘 미술품 구매 열기가 워낙 뜨겁다 보니 예약 판매로 그림이 품절된 경우 첫날 전시장을 찾은 고객들의 항의가 너무 거세졌다”고 했다. 그런 연유로 ‘선착순 1인당 1점’을 조건으로 판매가 진행됐고, 50여 명의 대기줄이 펼쳐진 것이다.
지난달 서울 한남동의 한 갤러리 앞에서도 이 같은 진풍경이 목격됐다. 직장인 컬렉터들을 위한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당시 후기가 올라왔다. “이번에 그림을 구하지 못하면 6개월 이상 대기 시간이 필요했기에 전시 개막 당일 새벽 3시에 일어나 캠핑 장비를 챙겨 나섰다”며 “줄 선 지 얼마 안 돼 캠핑용 의자를 둘러멘 다른 대기자가 도착하더라”는 내용이었다. 대개 시장에 갓 뛰어든 신규 컬렉터들이다.
대기 행렬 가운데는 ‘웨이팅 알바’(줄 대신 서주는 아르바이트)도 적지 않다. 갤러리 측은 “너무 일찍 번호표를 배부하면 그걸 돈 받고 팔기도 한다”고 했다. 이들은 소셜미디어 및 온라인 커뮤니티에서의 적극적인 정보 공유를 통해, 아직 저평가된 신진 유망 작가를 목표로 삼는다. 크게 부담되지 않는 가격으로 작품을 선점해 훗날 차익 실현을 기대하려는 계산이 담겨있다. 청신 작가 역시 그림 가격이 호당 12만원으로, 100호 크기 그림값이 1000만원 수준이다. 정준모 미술평론가는 “해당 작품이 정말로 마음에 들어 사는 거라면 문제없지만 미학적 판단 없이 부화뇌동해서 남 따라 사는 경우 후회할 공산이 크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