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옛말은 노동의 정직함을 은유한다.
올해 제34회 ‘이중섭미술상’ 수상자로 선정된 서양화가 정정엽(60)씨는 매일 팥을 그린다. 때로 콩이나 녹두 등을 붓으로 빚기도 한다. 하루 8시간 주 5일, 근로하듯 곡식 알갱이 한 알 한 알로 캔버스를 가득 채운다. “씨앗이자 생명을 의미하는 동시에 실제 굴러다니는 하나의 점이고 색채여서 다양한 조형적 즐거움을 준다”고 정씨는 말했다. 시시하지만 아름다운 그것들은 구상이면서 추상이고, 저들끼리 마구 섞여 색의 환호(‘축제’)가 되거나 검은콩의 거대 우주(‘흐르는 별’)를 이룩한다.
처음 곡식을 회화적 대상으로 마주한 건 1994년, 당시엔 자루째 그렸다. “부천에 살 당시 재래시장에서 자루에 담긴 곡식을 처음 보고 풍요로움에 매혹됐다. 모든 색이 담겨 있었다. 가득 모여 있을 때 불가사의한 힘까지 느껴졌다. 매일 먹으면서도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았던 그곳에 내가 나고 자란 땅의 미학이 있었다.” 2년쯤 뒤부터 그것을 하나씩 그리기 시작했다. 무더기지만 개별적인 그 존재를 “살림의 시선이자 여성이 생명을 키우며 느끼는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봤다. 100호(130x162㎝)짜리 그림은 완성에 한 달이 걸린다. “그래도 하나씩 그려야 모이고 쌓여 이야기를 만들어낼 것 같았다.”
그의 화업은 아무도 진지하게 바라보지 않는 장면에서 생명력을 발견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정씨는 1980년대부터 여성과 노동, 소외된 일상을 회화로 옮겨오고 있다. 1985년 이화여대 졸업 직후부터 노동 현장과 민중 미술 그룹 ‘두렁’ 및 ‘여성미술연구회’ 등에서 활동하며 예술 세계를 열어왔다. 애 둘을 데리고 부평공단의 취업 공고판을 바라보는 여인(‘집사람’·1991)처럼 “보이지 않는 노동”을 드러내는 그림들이다. 대표작으로 장바구니 든 7인의 여성을 그린 ‘식사 준비’(1995)가 있다. “저녁 나절 손에 뭔가를 들고다니는 건 대개 여자였다. 시장을 나서자마자 가족을 위해 그들은 뒤도 안 돌아보고 집으로 돌진했다. 나 아니면 아무도 이들을 그리지 않을 것 같았다. 증언하는 마음으로 그렸다.”
그들은 진군하듯 당당하다. 지난해 완성한 그림 ‘할머니 특공대’ 역시 이 연장선에 있다. 전남 구례 장터의 한 행사에서 꽃무늬 ‘몸뻬’ 바지를 입고 모델처럼 워킹하는 할머니들을 담은 그림이다. “몸뻬는 노동의 옷이지만 화려하지 않은가. 할머니들이 보여주는 노동의 정서는 찌들어있지 않고 오히려 명랑하다. 얌전하고 누구는 발랄하고, 캐릭터가 전부 다르다. 일괄적이지 않다.” 낱알의 에너지로 가득한 봄의 몸짓. “이 할머니들이 이 땅을 지켜왔다.”
1995년 첫 개인전 이후 개인전만 20회, 지금도 대구에서 곡식 그림으로 전시를 열고 있다. “정엽이는 집 떠나고 싶으면 등산용 배낭을 짊어지고 설거지를 한다”는 김혜순 시인의 시구(‘물구나무 팥’)처럼, 살림과 작업을 병행하며 속 태우던 시절 속에서 그는 묵묵히 그렸고, 주목받는 주요 화가로 자리매김했다. “여성의 시선을 사람에서 사물과 식물까지, 우리 삶을 이루는 것들로 더 넓혀나갈 것”이라고 했다.
◇“여성·생명·평화·삶… 약자에 대한 연대와 공감 그려”
화가 이중섭은 평생 약자로 살았다. 이방인이고 떠돌이였다. 시대의 격랑 속에서 이중섭은 제주·부산·통영을 전전했고, 일본 밀항과 귀국으로 이어지는 험난한 여정을 버텨야 했다. 생이별과 그리움을 홀로 견디다 점차 쇠약해졌다. 그러나 그가 택한 삶과 예술의 방식은 분노와 증오가 아니라 사랑이었다.
이중섭미술상의 취지는 이중섭의 예술 정신을 기리고, 그 정신을 거울 삼아 약육강식의 현실을 돌아보는 것이다. 정정엽은 1980년대 노동운동을 시작으로 세상의 소외된 가치와 약자에 대한 연대와 공감을 변함없이 지켜온 작가다. 이 정신성을 미학적 자양분으로 여성·생명·평화·삶이라는 예술 여정을 이어오며 한국 화단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일궈냈다.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제34회 이중섭미술상 심사위원회 (박천남·서용선·신정훈·심상용·임근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