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날 말해 봐야 소용없다.
그리하여 세계적 행위예술가 마리나 아브라모비치(76)는 실제 살상용 화살로 ‘믿음’의 실험을 진행했다. 마리나는 활대를 잡고, 맞은편 남성은 화살깃을 손끝으로만 잡은 채 몸을 서로의 반대편으로 기울이며 팽팽히 시위를 당기는 퍼포먼스였다. 화살은 마리나의 심장을 향해 있어, 자칫 힘의 균형이 깨지면 곧장 대형 사고로 이어지는 대단히 위험한 쇼였다. 맞은편 남성은 당시 마리나의 연인이었던 독일 행위예술가 울라이(F. Ulay)다.
1980년 진행한 퍼포먼스 ‘Rest Energy’(정지 에너지)가 서울 방이동 소마미술관 기획전 ‘몸∞맘’에 출품돼 8월 7일까지 관람객을 맞는다. 당시 현장을 녹화한 4분 10초짜리 영상으로, 작가 스스로 가장 힘들었던 작품으로 꼽기도 했다. 퍼포먼스가 시작되면서 의문의 쿵쿵 소리가 들려오는데 이것은 실시간 녹음된 두 사람의 심박 소리다. 서로 악의가 없으며, 노력하고 있고, 만약의 실수도 없을 거라는 타인에 대한 전적인 믿음은 퍼포먼스 내내 끊임없이 시험대에 오른다. 마리나는 “4분 10초라는 짧은 시간이 내게는 영원했다고 말할 수 있다”며 “정말이지 완전한 신뢰에 대한 공연이었다”고 밝힌 바 있다.
유고슬라비아 출신인 마리나는 최근 자선 퍼포먼스 등을 통해 인접국 우크라이나 돕기에 한창이다. 매번 극단적 상황을 연출해 가장 원초적 질문을 제기하는 작가처럼, 전쟁 상황이 ‘인간을 향한 믿음’이라는 유구한 고민거리를 던진다. 내가 너를 믿을 수 있는지, 그것은 언제나 목숨이 달려야 명확해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