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신뢰하기 어렵죠.”

지난 일요일 폐막한 ‘아트부산’은 올해 매출액을 국내 아트페어 역사상 가장 높은 760억원으로 발표했다. 행사가 끝난 지 채 하루도 안 돼 참여 갤러리 133곳의 판매 현황을 종합해 지난 16일 오전 발표한 것이다. 아트부산 측은 “매일 전시장에서 판매 작품과 가격을 확인했고 VIP 컬렉터 및 온라인 판매 플랫폼까지 조사한 결과”라고 했다. 그러나 본지 취재에 응한 다수의 갤러리 대표들은 “매출액을 확인해 간 사무국 직원은 없었다”고 말했다. 황당한 실수도 확인됐다. 팔리지도 않은 13억원짜리 백남준 작품이 판매됐다고 집계된 것이다. 지적이 나오자 아트부산은 “온라인 자료에 오류가 있었다”며 매출액을 746억원으로 축소해 다시 발표했다.

미술 시장 활황 속에서 아트페어마다 “역대 최고 매출”을 부르짖으면서 의구심도 증폭되고 있다. 세무 당국이 나서지 않는 한 구체적 검증이 어려운 수치이기 때문이다. 지난해부터 ‘한국국제아트페어’(650억원) ‘화랑미술제’(약 177억원) ‘부산국제화랑아트페어’(약 250억원) 등이 자체 매출 기록을 잇따라 경신했다. 전년 대비 2~4배 폭등인 데다, 대개 행사 종료 하루 만에 발표한 숫자다. 한 국내 중진 갤러리 대표는 “시장 분위기가 뜨거운 건 사실이지만 과장이 심한 것 아니냐는 주변 반응이 많다”고 말했다. 한국화랑협회 황달성 회장은 “외국 갤러리의 경우 판매액을 정확히 밝히지 않는 경우가 많아 여러 경로로 입수한 정보로 추산치를 낸다”고 했다. ‘비공인 신기록’ 남발에 신빙성 문제가 제기되는 이유다.

지난달 벡스코에서 열린 제11회 '부산국제화랑아트페어'(BAMA) 풍경. 주최 측은 방문객 숫자를 10만명으로 추산했다. /부산화랑협회

이 같이 급조된 통계는 한국에서만 발견되는 진풍경이다. 해외 유수 아트페어에는 이 같은 관행이 없다. 국제 무대에서 명성이 높은 이용우 큐레이터는 “각국의 ‘큰손’이 모두 모이는 중국 상하이에서도 아트페어 측이 총매출을 밝히는 경우는 없다”며 “허수의 가능성이 존재하기에 시장 추이를 참고하는 정도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받아쓰기에 급급한 일부 매체를 이용해 호황의 소문을 증폭시키고, 브랜드 가치를 높여 부스(booth) 판매 가격 등 몸값 상승의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홍경한 미술평론가는 “밴드왜건 효과에 대한 노림수임을 알면서도 ‘장사 잘되나 보네’ 넘어가곤 했지만 점차 경쟁적으로 높은 금액을 부르면서 거품론이 함께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수상한 수치는 매출액뿐만이 아니다. 부산국제화랑아트페어는 지난 4월 행사 방문객 숫자를 10만명으로 계산했다. 메이저급으로 평가받는 행사가 아님에도 전년보다 2.5배 뛴 전례없는 숫자다. 한 달 뒤 아트부산은 10만2000명으로 공표했다. 아시아 최대 미술장터 ‘아트바젤 홍콩’조차 코로나 발발 이전 방문객이 8만명 수준이다. 두 행사에 모두 참여한 갤러리 대표는 “아무리 흥행 분위기를 감안해도 10만명이나 될 정도인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양 주최 측은 그러나 “사실에 근거했다”는 입장이다. 숫자의 투명성에 물음표가 잦아지면 미술 시장 전반의 신뢰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도 문제를 인지하고 대책 마련에 나섰다.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는 “미술 시장에 유통되는 부정확한 정보 대신 객관적 지표를 생산하기 위해 올해 안에 주요 기관과 협의체를 구성하고자 논의 중”이라고 했다. 서진수 강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국내 아트페어도 노하우가 축적되고 운영 방식이 발전한 만큼 컬렉터에게 실질적 도움이 되는 판매 정보 위주의 글로벌 스탠더드로 나아갈 단계”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