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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 정보가 감상을 해친다.
그래서 작가 이름, 그림 제목, 제작 연도 및 작품 해설도 이 전시장에서는 볼 수가 없다. 일부러 가려놨기 때문이다. 미술관에서 작품보다 벽면의 설명문을 먼저 들여다보는 습관은 여기서 저지된다. 일체의 설명 없이 오롯이 작품과 마주해야 하는 것이다. 부산현대미술관에서 7월 17일까지 열리는 이 전시 제목이 ‘거의 정보가 없는 전시’인 이유다. 미술관 측은 “감상자 대부분이 작품 이해를 위해 외부 정보에 의존하게 된 동시대 예술의 현실을 고찰하고자 마련한 전시”라고 밝혔다. 이제 감상의 잣대는 관람객의 미감(美感)뿐이다.
국내외 작가 15인의 작품 50여 점이 익명으로 놓여있다. 최상호 학예사는 “차포(車包) 떼고 보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시장 초입에 놓인 임○○ 화가의 그림 ‘△△△’<사진>이 상징적으로 전시 취지를 웅변한다. 한 관람객이 텅 빈 팸플릿을 들고 골똘히 그림을 들여다보는 그림이다. 그림의 의미를 읽어내기 위해 그림 앞에 더 오래 머물게 되고, 그것은 의외의 해석을 도출하게 될 가능성을 높인다. 감상이 고통이 되지 않도록 너무 난해한 작품은 출품작에서 제외했다.
전시장 출구 쪽 벽면에 현대미술에 대한 소견을 포스트잇에 써 붙일 수 있도록 꾸며놨다. ‘동시대 예술은 다’의 빈칸을 채우는 것이다. ‘혼란’ ‘착각’ ‘꿈보다 해몽’ 등의 대답이 한가득이다. 한마디로 어렵다는 푸념이다. 이 전시는 미국 미술평론가 아서 단토(1924~2013)가 주장한 “어떤 것을 예술로 본다는 것은 눈으로 알아낼 수 없는 어떤 것–예술 이론의 분위기와 예술사에 관한 지식–즉 예술계를 요구한다”는 논리에 대한 반박이기도 하다. 작품에 강제된 정답을 벗겨냄으로써 “다양성·상대성·복수성을 추구하는 열린 사고의 획득”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관람객은 익명의 작품마다 온라인 감상평을 달 수 있다. 일주일 만에 1000건이 넘었다.
모든 작품 정보는 7월 1일 베일을 벗는다. 계급장을 뗐을 때와 다시 붙였을 때, 감상이 어떻게 변하는지 확인하려면 미술관에 다시 들러야만 한다. 무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