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컬렉션’이 베일을 벗는다.
청와대 전격 개방과 맞물려, 그간 금단의 영역으로 여겨진 청와대 소장 미술품에 대한 정부 차원 전수조사와 도록 제작이 추진될 전망이다.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는 본지 통화에서 “국민적 관심과 요구를 반영해 청와대 소장품 현황 파악과 도록 제작을 면밀히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청와대 공간뿐 아니라, 청와대의 문화적 재산이 오랜 폐쇄성을 벗는다는 데 의의가 있다.
지금껏 ‘청와대 컬렉션’ 전체 목록이 공개된 적은 한번도 없다. 600점 수준의 대략적 개수나 소수의 유명 작품만 파편적으로 알려졌을 뿐, 전작(全作)의 작가·작품명·제작연도·취득일 같은 기본적인 정보조차 대외비에 부쳐졌다. 공개 시 특정인에게 이익 또는 불이익을 줄 우려가 있다는 이유였다. ‘깜깜이’ 관리 문제가 수차례 지적됐다. 2017년 도록 제작이 추진됐다가 흐지부지됐고, 이듬해 청와대 사랑채에서 소장품 31점을 소규모 전시했으나 이마저 일회성에 그쳤다. 정준모 전(前)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실장은 “김대중 정부 당시 처음 미술품 조사를 시작해 매 정권마다 서류상 목록은 정리해왔다”며 “도록을 발간해 세상에 알리면 핵심 권력 기관의 미술품 수집 역사를 개괄할 수 있고 향후 관리 및 활용 방안의 단초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가장 비싼 작품은 단연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의 ‘비디오 산조(散調)’로 꼽힌다. 전통 가락 산조의 흐름을 12인치 TV 83대로 형상화한 작품으로, 1990년 청와대 춘추관 준공 당시 기증받았다. 춘추관 1~2층을 잇는 계단 벽면에 걸려있는데, 전기세 등의 이유로 전원 켜진 날이 드문 비운의 작품이다. 백남준 작품을 전문으로 다루는 한 갤러리 대표는 “워낙 대작이라 수십억원은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물방울 화가’로 유명한 김창열이 문자와 물방울을 함께 그린 ‘회귀’ 연작도 목록에 포함돼있다. 2005년 조달청이 4000만원으로 책정했지만, 비슷한 크기인 100호짜리 ‘회귀’ 연작이 지난해 경매에서 1억6000만원에 낙찰됐다. 농원의 화가로 유명한 이대원 ‘비경’ 등 수준급 서양화도 목록에 자리한다.
소장품 종류로는 도자기가 가장 많고 한국화·서양화·서예 등의 순이다. 특히 풍경화가 많다고 한다. ‘운봉’ ‘매화’를 포함 20여 점에 달하는 동양화가 월전 장우성의 그림을 필두로, 민경갑 ‘장생’, 김기창 ‘산수’, 이상범 ‘추경산수’ 등이 포진해있다. 1970년 국전(國展) 대통령상 수상작인 김형근 ‘과녁’처럼, 현재 중앙화단과는 거리가 있지만 당대를 증언하는 작품도 미술사(史)적 의미가 크다.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인 화가 오승우 등 구상미술단체 목우회(木友會) 소속 작가의 작품도 다수인데, 김종필 전 총리와 각별했던 관계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체계적 수집 기준 없이, 권력자의 취향에 따라 사들이거나 각지에서 보내온 수준 미달의 작품이 뒤섞여 전반적인 질(質)이 높지는 않다는 평가다. 맥락화가 안 돼 전시 구현도 쉽지 않다. 백악관뿐 아니라 군대(육·해·공군)에도 관련 미술품 관리 조직을 두고 수집과 전시를 진행하는 미국과 비교되는 지점이다. 보존·수복도 고민거리다. “남길 건 남기고 일부는 국·공립미술관으로 보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 같은 이유로 2000년대 초 대통령 경호실 구내식당 등에 걸려있던 그림 20여 점이 국립현대미술관으로 관리 전환돼 소장처가 바뀐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