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하인드 스토리는 뒷면에 있다.
그러니 그림도 앞면이 전부가 아니다. 단색화 거장 박서보(91)씨의 그림 한 점은 지금 공중에 걸려 있다. 전매특허 ‘묘법 No.6-67′ 앞면과 뒷면을 동시에 보여주기 위해서다. 박서보의 캔버스 뒷면은 그림의 역사를 드러내는 족보와도 같기 때문이다. 제작 연도, 출품 내역, 가필(加筆) 여부, 그림 위·아래 방향까지 친필 정자(正字)로 한글·한문·영어까지 섞어 정성껏 표시해놔 흥미로운 볼거리다. 박씨는 “작품 하나하나에 쏟는 작가의 열정을 보여주는 지표”라며 “매직펜이 아니라 유화 물감과 붓으로 쓰고 말리느라 시간도 오래 걸린다”고 말했다. 이 배후는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11월까지 볼 수 있다.
그림 뒷면이 벽면에서 해방되고 있다. 그림 소유자가 아니면 좀처럼 볼 수 없는 뒷면을 공개해 그림의 역사를 드러냄으로써 더 풍부한 감상을 가능케 하는 것이다. 서울 환기미술관 30주년 전시장에서도 김환기(1913~1974)의 점화 ‘9-l-70 #140′ 뒷면을 볼 수 있도록 벽면 대신 중앙 특수 진열대에 놓았다. 사실상 양면화(兩面畫)인데, 십자구도의 기하추상을 그리다 마음에 들지 않자 미완성으로 두고 캔버스를 뒤집어 1970년 전면점화를 새로 그린 탓이다. 가난했던 화가의 캔버스 재활용 사례다. 7월 31일까지.
때로는 옆도 살펴야 한다. 눈 밝은 관람객이라면 ‘산’의 화가 유영국(1916~2002) 20주기 특별전 그림 목제 액자 옆면에서 조그마한 ‘그림 사진’을 발견할 수 있다. 산을 그려낸 ‘Work’ 연작을 카메라로 촬영한 뒤 3~4㎝ 남짓한 작은 사진으로 인화해 해당 그림 액자 옆면에 일련번호와 함께 붙여 놓은 것이다. 사진에는 1995년이라는 촬영 연도가 찍혀 있어 자체로 독특한 사료(史料)다. 전시를 주최한 서울 국제갤러리는 “유영국미술문화재단 측이 과거 그림 운반 및 설치 편의를 위해 해둔 조치인데 뜯지 않은 채 전시했다”고 설명했다. 이제는 액자가 손상될까 더는 하지 않는 20여 년 전 풍속이라 한다. 유심히 들여다 볼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8월 21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