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가끔 그런 생각을 해. 한국 건물 앞 필수인 조형물들이 갑자기 서로 배틀(battle)하는 걸. 사람들은 처음에 놀랐다가, 왜 싸우는지 모르지만, 일단 자기네 회사 앞 조형물을 응원하는.”
지난 2일 이 트윗 하나가 이른바 ‘천하제일 조형물 무술대회’의 불씨가 됐다. 자정만 되면 학교 안 이순신 동상과 유관순 동상이 움직여 서로 자웅을 겨룬다는 먼 옛날의 우스갯소리가 ‘공공미술’을 소재로 온라인에서 다시 깨어난 것이다. 이 트윗에 호응한 트위터 유저들이 “우리 동네가 더 세다”며 위협적으로 탱천한 초대형 남근 대포(삼척)부터, 거인 인삼(금산), 한강 식인 괴물(서울)에 이르기까지 전국 각지의 요상 망측한 조각상(像) 사진을 잇따라 게재하며 경쟁에 불이 붙었다. 실제 대결이 벌어지는 건 아니지만, 지금껏 올라온 배틀 신청만 900여 건에 달한다.
그간 저의를 알기 힘든 조형성 탓에 흉물로 여겨졌던 공공미술이 놀이의 장(場)으로 들어오면서 전례 없는 응원을 받고 있다. 연면적 1만㎡ 이상의 건물을 지으려면 건축비의 약 1%를 야외 미술품 설치에 쓰도록 한 문화예술진흥법으로 인해 웬만한 아파트나 회사 앞에 조각상이 한 점 이상 놓여있다. 그러나 제목도 작가도 모르는, 그래서 비둘기 서식지 정도로 전락했던 공공미술에 유희적 창구가 마련되자, 네티즌들이 자발적으로 나름의 별칭까지 붙여가며 지역성을 어필하고 있는 것이다.
괴물(?)들도 알고 보면 족보가 있다. 서울 광화문 일대 회사원들에게 익숙한 이른바 ‘청계천 왕골뱅이’ 조각상은 미국 팝아트 작가 클래스 올덴버그의 ‘스프링’이다. 2006년 당시 34억원이라는 막대한 제작비가 투입됐음에도 커다란 소라고둥 정도로 취급받는 비운의 작품이다. 대치동 포스코센터 전면에는 “슈팅 게임 최종 보스처럼 생긴” 고철 조각이 있다. 당장이라도 십자포화를 쏘아댈 무기처럼 생겼지만, 인간성 회복을 염원하며 미국 작가 프랭크 스텔라가 제작한 꽃 조각(’아마벨’)이다. 이 역시 1997년 설치와 동시에 도시 미관을 해친다는 비판이 거세 철거 위기까지 몰렸다. 제목은 제작 도중 비행기 사고로 사망한 친구의 딸 이름으로, 해당 비행기 잔해 일부가 작품에 사용됐다.
알아야 보인다. 영등포역 타임스퀘어 앞, 서로의 어깨 위에 올라탄 수십 명의 인간 군상이 이어져 탑의 형태를 이뤄 ‘인간 지네’로 불리는 동상은 유명 설치미술가 서도호의 대표작 ‘카르마(karma)’다. 사전 정보 없이 접하면 도인(道人)이 분실술 쓰는 무협지의 한 장면처럼 보일 수 있지만, 대대로 이어진 인류의 업보와 역사의 흐름을 의미한다. 한 트위터리언은 “쭉 둘러보니 아무래도 이번 배틀에서는 ‘인간 지네’의 우승이 가장 유력한 것 같다”고 썼다.
“우리나라에 이렇게나 몬스터가 많았다니.” 하지만 이 연쇄적 트윗 놀이의 본질에는 공공미술의 ‘괴상함’이 자리한다는 점에서 마냥 웃을 수만은 없다. 대체로 괴수는 거대하고, 랜드마크로 삼기 위해 조형물의 예술성보다 규모에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많다. 금산군이 1500년 인삼 역사를 상징해 15m 높이로 세운 인삼 모자(母子) 조각상 등이 대표적이다. 2016년 여주에 들어선 ‘트로이 목마’는 높이 25m에 사용된 목재만 30t으로, 세계 최대 크기 트로이 목마라는 대대적 홍보가 뒤따랐다. 그러나 왜 하고 많은 상징물 중에 굳이 트로이 목마여야 했는지는 끝내 의문으로 남는다. 제주도 난타호텔 앞에 놓인 일명 ‘슉슈슉’ 돌하르방은 양손에 주방용 칼을 든 채 도발적 자세를 취하고 있는데, 난타 공연 장면을 본뜬 것이긴 하나 오해의 소지도 적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