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지 말라고 밤에 전구불이 켜진다. 가난한 빛이 작은 집의 주름진 살갗을 오래도록 쓰다듬는다.
서양화가 정영주(52)씨가 그려내는 달동네 풍경이 캄캄한 상실의 회화에 머물지 않는 이유는 불빛이 좁은 골목을 비추고 있기 때문이다. 조도(照度) 낮은 빛이 그러나 체온의 회복을 돕기 때문이다. 과거 정씨는 프랑스에서 학업을 마치고 미국에서 작품 활동을 하다 IMF 외환위기를 맞았다. 경제적 위기, 원치 않은 귀국, 방황이 이어졌다. 그때 새삼 눈에 띈 것이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한 달동네, 유년 시절 부산에서 숱하게 봐온 풍경이었다. “나 자신 같았다”고 했다.
2008년부터 달동네 연작을 시작했다. 캔버스 위에 한지를 오려 붙여 판잣집의 형상을 빚고, 물감으로 채색하는 방식이다. 쭈글쭈글한 종이가 늙은 집의 표정을 극대화한다. 가장 마지막에 불빛을 그려 넣는다. 화룡점정처럼, 이 빛으로 인해 달동네는 절망의 거처에서 일순 삶의 숙소로 탈바꿈한다. 불안한 잠과 외풍 속에서 화가는 계속 그렸고, 인기 작가로 도약했다. 그림은 더 밝아졌다. “예전 그림에선 빛이 안으로 숨고 아주 미세했는데, 지금은 색도 선명해지고 밖으로 더 넓게 많이 비추고 있다”고 정씨는 말했다.
그 증거를 서울 소격동 학고재에서 21일까지 확인할 수 있다. 근작 28점을 모은 자리다. 미술애호가인 방탄소년단 리더 RM이 사랑하는 작가로 곧잘 소개되곤 하지만, 최근 RM은 학고재 측에 직접 전화를 걸었다. 자기 이름이 전시회 소개에 거론되지 않도록 부탁했다고 한다. 작가에게 닿아야 할 조명이 본인에 가려질까 염려한 것이다. 그러나 그림은 특유의 내구력을 입증하며 저 스스로 빛나고 있다. 작품은 모두 팔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