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처음 서울에서 열리는 ‘프리즈’의 지난해 런던 전시장 풍경. 17세기 네덜란드 회화(왼쪽)와 길버트&조지의 1982년 작 ‘벌거벗은 아름다움’이 보인다. /프리즈

소문난 잔치가 시작된다.

한국을 대표하는 아트페어 ‘키아프’(Kiaf)와 국제적 명성의 영국 아트페어 ‘프리즈’(Frieze)가 9월 2일 서울 코엑스에서 공동 개최된다. 프리즈는 이른바 ‘세계 3대 아트페어’ 중 하나이고 아시아 진출은 처음이다. 내수용에 머물던 한국 미술 시장이 일순 세계적 관심의 중심에 선 이유다. 서울 전역에서 명작 전시가 잇따르고, 특급 호텔들은 패키지까지 만들어 수퍼 컬렉터 모시기에 나섰다. 프리즈는 9월 5일, 키아프는 6일까지 열린다. 최근 이어진 호황세와 특급 이벤트에 힘입어 올해 한국 미술 시장 규모는 최초로 1조원을 넘길 거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초호화 갤러리, 서울로 집결

'프리즈 서울'에서 스위스 갤러리 하우저앤워스가 선보일 미국 유명 화가 조지 콘도 최신작 'Red Portrait Composition'(216×229㎝). /©️George Condo
전세계 NFT 열풍을 몰고왔던 'BAYC(The Bored Ape Yacht Club)' 연작 중 하나인 'BAYC #8220'. 올해 '키아프 플러스'에서 선보인다. /ⓒElite Apes

프리즈는 이름부터 압도적 위용을 자랑한다. 한국에 처음 노크하는 가고시안을 포함해, 하우저 앤드 워스·데이비드 즈워너 등 21국 110여 호화 갤러리가 총출동한다. 리처드 세라·조지 콘도·루이스 부르주아 등의 대표작뿐 아니라, 수백억원대 작품이 즐비한 특별 섹션 ‘프리즈 마스터스’를 통해 피카소·자코메티·리히텐슈타인 등 서구 미술사(史) 걸작을 선보인다. VIP 20만원, 일반 7만원에도 입장권 예매 열기가 뜨거운 이유다.

규모 면에서 열세인 키아프는 백남준·이응노·김구림·이건용·김수자 등 국내 주요 작가를 앞세우는 전략을 택했다. 동시에 뉴미디어 작품 중심의 ‘키아프 플러스’를 인근 대치동 세텍 전시장에서 선보이며 NFT(대체불가능토큰) 등으로 승부하겠다는 계획이다. 한날한시, 한 지붕 아래 벌이는 전시이기에 한국 아트페어가 과연 세계 수준에 도달했는지 즉시 판가름 날 것으로 보인다. 황달성 한국화랑협회장은 “전년 매출의 3배”를 목표로 내걸었다.

◇도심 곳곳 미술 항연

서울 청담동에서 사흘간 전시되는 프랜시스 베이컨 1961년작 ‘교황을 위한 습작 I'. /크리스티홍콩

전시장 바깥에서도 관람은 계속된다. 먼저 ‘프리즈 필름’이 8월 31일부터 9월 7일까지 서울 종로 일대에서 열린다. 한국 및 한국계 디아스포라 작가들의 영상 작업 10점을 소개하는 자리다. 서울 한남동·삼청동 화랑 밀집가에서는 갤러리 야간 개장 프로그램 ‘한남 나이트’(9월 1일) ‘삼청 나이트’(9월 2일)가 예정돼있다.

위성 전시도 북새통을 이룬다. 미술품 경매회사 크리스티홍콩은 5000억원 상당의 프랜시스 베이컨 그림으로 청담동 분더샵에서 9월 3~5일 전시를 연다. ‘교황’ 연작 등 국내에는 처음 소개되는 그림이다. 경매회사 필립스 역시 31일부터 일주일간 외국 신진 작가 23인으로 꾸린 국내 첫 전시를 진행한다. 필립스 측은 “지난해 한국 컬렉터의 구매가 전년 대비 258% 증가했다”며 “이번 전시는 한국 시장의 지속적인 성장세를 배경으로 한다”고 했다.

◇한국 미술 알려라

한국화랑협회가 키아프와 연계해 인천국제공항제1여객터미널에서 개최하는 위성 전시. 해외 방문객의 이목을 끌기 위한 시도다. /키아프

그러나 해외 자본에 자리만 깔아주고 잠식당할 수 있다는 우려도 만만찮다. 우리 미술의 홍보와 수출의 계기로 삼으려는 물밑 작전이 치열한 이유다. 키아프는 20개 갤러리를 선정해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에서 9월 25일까지 특별전을 연다. 테이트·구겐하임·M+ 등 유수의 미술 기관장 및 큰손들이 일제히 입국하는 만큼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첫인상을 심기 위해서”다.

전시 기간에 맞춰 코엑스 건물에서 한국 작가 55인을 소개하는 전시 ‘더 아트플레이스 HMC’도 그 일환이다. 예술경영지원센터는 고산금·이슬기 등 국내 중진 작가 12인을 선정해 영문 서적을 발간하고, 해외 전문가를 작가 작업실에 초청하고, 국제 콘퍼런스를 연계함으로써 이들의 주목도를 높인다는 계획을 세웠다. 국립현대미술관은 개관 이래 처음 국제교류팀을 신설한다. “지각변동에 대응하겠다”는 것이다.

◇일본도 곤두섰다

정치 불안으로 홍콩의 ‘아시아 시장 1번지’ 위상이 추락하면서, 서울은 차기 맹주로 떠올랐다. 1~2년 새 세계 정상급 갤러리가 모여드는 가장 역동적인 시장이 된 것이다. 프리즈 측이 서울을 택한 이유도 “훌륭한 작가 및 갤러리·미술관이 많아 아트페어에 완벽한 도시”라는 이유였다. 그러자 일본도 내년 7월 새 아트페어 ‘도쿄 겐다이’(現代) 출범 계획을 발표하는 등 견제 분위기가 역력하다. 미국 아트뉴스가 최근 “1980년대 전성기 당시 요동쳤던 도쿄가 다시 서울의 대안이 될 수 있을까?”라는 내용의 기사를 게재했을 정도다. 홍콩으로 발길을 돌렸던 경매회사 소더비를 15년 만에 다시 품에 안은 싱가포르도 새 아트페어 ‘아트SG’를 내년 1월 열기로 했다. 아시아가 꿈틀대는 것이다.

◇경기 침체… 호황의 끝?

다만 수치로 증명되는 경기 침체는 경고음을 내고 있다. 올해가 호황의 정점일 거라는 전망도 나온다. 차익 실현을 위한 단기 거래는 위험한 시점이라는 것이다. 한국미술품감정연구센터는 상반기 분석 보고서에서 “현재 미술 시장은 안전장치 없이 급브레이크를 밟고 있는 상황”이라며 “최근 잦은 거래로 값이 오른 신진 작가진의 작품 가격은 유지되지 못할 공산이 크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