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미술도 벼르고 있다. ‘프리즈 서울’이 자칫 외국인들을 위한 놀이터가 될 수 있다는 시선 때문이다. 한국 미술 세계화의 교두보로 삼기 위해 김환기부터 백남준, 이들의 세계를 확장한 후학들이 또한 올해의 새 주인공이 되려 한다. ‘프리즈 서울’ 참여 국내 갤러리는 12곳이다.
콘셉트도 확실하다. 백남준이 오랜 벗 요제프 보이스의 죽음을 애도하는 설치작 ‘로봇-라디오맨’, 아시아 여성주의 미술 대표 주자 윤석남이 나무에 조각한 ‘어머니’를 앞세워 학고재 갤러리는 ‘추모의 공간’을 조성했다. 인류애와 보편적 모성(母性)으로, 전염병과 전쟁이라는 세계의 비극을 치유하겠다는 의도다. 이봉상·류경채·이상욱·하인두 등 한국 현대 회화 선구자를 조명하는 자리도 마련한다.
갤러리현대는 부스를 ‘돌의 세계’로 꾸몄다. 실제 돌과 돌 영상이 재생되는 TV를 쌓아올려 현실·비현실의 경계를 탐구하는 박현기의 ‘TV 돌탑’(1988), 일본 모노하(物派)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곽인식이 도자기 재료 백토를 주먹밥처럼 꾹꾹 주물러 구워낸 ‘무제’, 철사로 묶음으로써 돌멩이를 부드러움의 유기체적 물성으로 전환하는 이승택의 ‘매어진 돌’ 연작이다. 돌은 가장 원초적인 자연의 대리물이자, 서구와 차별화된 한국의 전통과 생활 양식, 정신성을 상징하는 영험한 사물이기 때문이다.
대표 브랜드 ‘단색화’(單色畵)도 출격한다. 윤형근·정창섭(PKM갤러리), 박서보·이배(조현화랑), 남춘모·김근태(리안갤러리) 등을 내세워 컬렉터를 사로잡는다는 계획이다. 한국에서 가장 비싼 화가, 김환기도 포진했다. 국제갤러리는 은하수를 연상시키는 김환기 대작 ‘고요’를 내놨다. 작고 1년 전 뉴욕에서 제작한 대표작이다. 도쿄갤러리는 김창열·이강소 등 한국 단색화 작가와 다카마쓰 지로 등 일본 모노하 작가의 교류를 보여주는 기획전을 마련했다.
제주의 생명력 넘치는 풍경화로 최근 크게 각광받는 김보희부터 진주알로 텍스트를 표현하는 고산금까지 갤러리바톤은 주목할 한국 중진 화가로 진용을 꾸렸다. 원앤제이갤러리는 이른바 공간 드로잉으로 각광받는 오종을 소개하고, 리만머핀 갤러리는 세계적 설치미술가 이불과 서도호의 신작을 전시한다.
특별 섹션으로 마련된 ‘포커스 아시아’에서는 가장 젊은 한국 미술을 살필 수 있다. 갤러리 P21은 다소 엽기적인 ‘1인 미디어쇼’를 통해 예술과 비예술을 재주 넘는 미디어아트 작가 류성실을 선택했다. 올해 에르메스미술상을 받은 20대 신예다. 휘슬 측은 35세의 색면 추상 화가 배헤윰을 선보인다. 이번 페어는 현재 한국 미술의 최전선을 평가받는 자리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