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치는 끝났고, 정산이 남았다.

지난 한 주 국내외 미술시장을 뜨겁게 달군 아트페어 ‘프리즈 서울’(Frieze Seoul)과 ‘키아프’(Kiaf)가 5·6일 하루 간격으로 폐막했다. 세계적 아트페어 첫 유치와 기대감으로 서울이 세계 미술의 복판으로 떠오른 사건이었다. 6일 주최 측에 따르면, 양 행사 입장객은 각 7만여명을 기록했다. 예상 총매출은 ‘키아프’는 지난해 수준(600억원), ‘프리즈 서울’은 역대 최대인 수천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한 지붕(코엑스)에서 5년간 공동 개최되는 두 행사는 동시에 여러 고민거리를 남겼다.

◇현실의 벽 높았다

체급 차는 예상대로 컸다. 갤러리 명망부터 출품작 수준까지 ‘프리즈’는 단연 토종 아트페어를 압도했다. 그림 하나에 680억원짜리도 있었고, 지난 2일 개막 당일 하루에만 그림 80억원어치를 팔아치운 갤러리도 나왔다. ‘현대미술’과 ‘근대·고미술’(프리즈 마스터스)을 공간적으로 분리해, 단조롭기 쉬운 전시 구성에 재미와 개성을 부여한 점도 호객의 요인으로 작용했다. 로빌런트+보에나 갤러리 마르코 보에나 창립자는 “피카소·샤갈·폰타나 등 최고의 유럽 작가를 데려왔고 이 조합이 부스를 관람객으로 가득 채우는 걸 보고 기뻤다”며 “내년에도 반드시 참가하겠다”고 말했다.

이름값 극복을 위해 ‘키아프’는 내실에 치중할 수 밖에 없었다. 한국적 색채와 실험성을 적극 앞세우다보니 단색화(單色畵) 일색이던 지난해보다 나아졌다는 평가도 나왔다. 서진수 미술시장연구소장은 “글로벌 운영 방식을 눈 앞에서 습득해 더 빨리 성장할 기회로 삼으면 된다”고 말했다. 반면 인근 대치동 세텍 전시장에서 처음 출범한 ‘키아프+’는 아쉬움을 남겼다. NFT(대체불가능토큰) 등 뉴미디어 아트를 내세웠지만, NFT 판매는 거의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화랑협회 관계자는 “가상화폐 시장이 침체되면서 투자가 안전 자산으로 쏠린 것 같다”고 말했다. 판세 예측에 실패한 것이다.

◇다시, 한국 미술로

갤러리조선 권미성 대표는 “전 세계의 눈이 서울에 쏠린 상황에서 결국 ‘키아프’는 유망한 한국 작가를 소개하고 발굴하는 공간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 매체 ‘아트뉴스’는 갤러리조선(민성홍)과 웅갤러리(김영주), 표화랑(백남준) 등을 ‘베스트 부스’로 꼽았다. 아트페어 기간에 맞춰 한국 작가의 스튜디오에 해외 관계자를 초청하는 행사가 잇따른 것도 분위기 조성에 한몫했다. 다만 한국 근현대 미술사 전반을 알리고 세계적 확장을 꾀하려는 국·공립미술관의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홍경한 미술평론가는 “미술계와 미술 시장이 따로 존재하는게 아니다”라며 “이미 글로벌 경쟁은 시작됐고 국공립미술관도 기민하게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올해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외국인 관람객 비중은 1.6%다.

◇'서울’이 브랜드돼야

이번 ‘프리즈’의 서울 진출은 한류(韓流)의 일환이다. 사이먼 폭스 프리즈 CEO는 “현재 한국은 미술뿐 아니라 음악·영화·패션 등 전방위에서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공동 개최 제안을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고 말했다. 문화 공간으로서의 서울에 끌렸다는 것이다. 전시는 관광업이고, 홍콩(중국)의 불안정과 일본의 폐쇄성을 넘어서는 서울의 역동성을 적극 이용해야 장기적으로 ‘아시아 미술 1번지’가 될 수 있다. 미국의 한 미술관 큐레이터는 “그림만 사러 비행기를 타게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지만 미식·여행 등 여러 취향이 충족되는 기반이 갖춰진다면 기꺼이 찾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