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 산수화를 대표하는 이상범의 ‘청전 양식’은 일제 강점기 신문 휘호 작품에서 기반이 시작됐다.”
올해 50주기를 맞아 수묵화 거장 청전(靑田) 이상범(1897~1972)을 주제로 열린 학술대회에서 흥미로운 주장이 제기됐다. 청전이 매일신보·조선일보·동아일보 등에 기고한 21점의 휘호(揮毫)를 분석한 근대미술연구자 최경현 문화재청 문화재감정위원은 “청전은 휘호를 통해 전통 화법과 서양화의 원근법을 절충하는 방식으로 다양한 변화를 모색했다”고 발표했다. 휘호는 새해나 기념거리 등을 위해 신문에 싣던 그림이다. ‘조선미술전람회’ 등 입선을 위해 기성 화단의 흐름대로 안정적으로 그려야 했던 공모전용(用) 그림과 달리 “신문의 경우 특정 미감을 고려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번 학술대회는 청전의 고향 충남 공주에서 지난 17일 개최됐다.
활동 초기까지만 해도 산수화는 머릿속에 담긴 자연 풍경을 근경·중경·원경을 포괄해 거시적으로 그리는 게 일반적이었다. 그러다 점차 실제 장소에 가서 눈앞의 풍경을 그리는 사생(寫生)의 개념이 퍼져 근경의 산수화로 변화했고, 청전은 이전에는 시도하지 않던 실험을 신문에서 펼쳤다. 최 위원은 1940년 1월 6일 자 조선일보에 실린 그림을 예로 들었다. 근경이 아닌 중경과 원경으로 담아낸 작품이다. “화면 중경에는 촌부가 어깨에 물동이를 멘 채 언덕 위의 좁은 길을 오르고, 원경에는 나무숲과 산자락이 펼쳐져 있다. 이때 중경은 서양 풍경화처럼 그려지고, 원경은 관념적으로 처리돼 이질적인 공간처럼 보이는 것은 이상범이 새로운 도전을 하면서 나타난 현상이라 이해된다. 이와 유사한 1958년 작 ‘도림유거’(桃林幽居)와 비교하면 휘호 작품이 1950년대 ‘청전 양식’에 중요한 밑거름이었다는 사실이 더욱 분명해진다.”
산촌의 소박한 미감을 드러내는 ‘청전 양식’은 한국적 산수의 전형을 보여준다고 평가받지만 “신문에 실린 이상범의 휘호 작품은 연구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이다. 최 위원은 “신문 휘호는 대중의 전통적인 서화 취향을 지속시키는 시각 이미지로 작동했다는 점에서 미술사적으로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