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섭이 1951년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유화 ‘서귀포의 환상’(54.7×91.6㎝). 가난하지만 가족과 행복했던 서귀포 시절을 이중섭은 낙원의 이미지로 옮겨냈다. /개인 소장

“화가 반 고흐는 전 세계 미술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파워 브랜드’(brand)일 것이다. 그의 삶과 예술을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하고 접근해 대중을 사로잡으려 공들인 결과다. 그렇다면 이중섭은 어떨까?”

28일 제주도 서귀포 KAL호텔에서 열린 ‘2022 이중섭과 서귀포’ 세미나는 개관 20주년을 맞은 이중섭미술관을 중심으로 이중섭 브랜드의 전략적 확산을 모색하는 자리였다. 이날 발표자로 참석한 제주현대미술관 변종필 관장은 “브랜드 파워는 미술관 미래를 결정짓는 요소”라며 “이중섭미술관이 작가 이름을 앞세운 여타 미술관과 어떻게 차별화할지가 핵심”이라고 말했다. 김창열·박수근·장욱진·이응노미술관 등 특정 작가를 기리는 공립 미술관이 넘치기 때문이다. “이중섭에게는 고흐처럼 대중적 관심을 유발하는 모티프가 있다. 가난, 가족과의 이별, 정신병원, 비극적 죽음 등 진실한 스토리텔링으로 브랜딩을 시도해야 한다.”

그 중심에 서귀포가 있다. 전쟁에 떠밀려 서귀포에 다다른 것은 1951 년 1월 15일이었다. 1년간의 서귀포 시절은 이중섭 작품 세계에서 매우 중요한 시기로 평가받는다. 가족과 함께한 가장 행복한 찰나였고 ‘서귀포의 환상’ ‘섶섬이 보이는 풍경’ 등 대표작을 남겼다. 게·물고기 같은 개성적 도상이 본격화한 곳이기도 하다. “‘이중섭 세미나’ 같은 연구 발표를 통해 서귀포와 이중섭 사이를 꾸준히 연결해야 한다”는 주문도 나왔다.

1951년 겨울, 이중섭이 서귀포에 도착한 직후 그린 '가족과 첫눈'(32×49.5㎝).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이중섭미술관은 현재 이중섭 원화(原畵) 60점을 소장하고 있다. 종이 살 돈도 없이 가난했던 이중섭이 담뱃갑 은지(銀紙)에 그린 은지화가 27점으로 가장 많다. 변 관장은 “이중섭 작품에서 ‘소’ 못지않게 중요한 시리즈가 바로 은지화”라며 “은지화로 특화한 상설 전시장 마련과 지속적인 연구 및 홍보·마케팅을 시도해야 한다”고 했다. 매년 약30만명이 찾는 이중섭미술관은 현재 미술관 신축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서귀포시는 미술관 20주년 기획전 및 ‘이중섭 거리’ 선포 25주년 행사 등으로 이중섭 브랜드 강화에 주력한다는 방침이다.

‘이건희 컬렉션’ 역시 이중섭 브랜드의 가치 상승에 큰 역할을 했다. 지난해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된 ‘이건희 컬렉션’ 1488점 중 수량 면에서 둘째(104점)로 많은 국내 작가가 바로 이중섭이었다. 소장품은 11점에서 115점으로 10배 늘었고, 언감생심이었던 자체 기획 개인전도 가능해졌다. 두 번째 발표자로 나선 국립현대미술관 우현정 학예사는 “비루한 현실에서도 이상을 그려낼 줄 알았던 이중섭의 삶과 예술이 ‘이건희 컬렉션’을 통해 더 많은 사람에게 가닿길 희망한다”고 했다.

이날 행사엔 이종우 서귀포시장, 강명언 서귀포문화원장, 김병수 전 서귀포문화원장, 이중섭미술상 수상자 강요배 화가, 고영우 기당미술관 명예관장, 이나연 제주도립미술관장, 최형순 제주도립김창열미술관장, 김기주 김한미술관장, 이중섭 조카 손녀 이지연·지향씨, 이중섭에게 셋방을 내준 김순복 할머니의 딸 송경생씨, 김문순 조선일보 미디어연구소 이사장과 제주도민 50여 명이 참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