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나 학술적 가치에 개의치 않고 너무나 현대적이고 세련된 미적 조형물로 감상하고 편애했다.”
미술평론가 박영택(59) 경기대 교수는 지난 10년간 가야·신라 시대 손잡이 잔을 수집하고 있다. 오래전 어느 컴컴한 무덤에서 도굴돼 시중에 흘러나왔을 이 토기들은 그래서 족보가 없다. 내력을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거친 표면에서 일렁이는 단아한 무늬와 운율, 특히 당나귀 귀·달팽이 집 등의 형태로 달린 야무진 손잡이는 수집가를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지난 10년간 인사동·장한평·답십리 골동상부터 지방까지 뒤져 사 모은 것이다. 청자·백자와 달리 이 고졸한 손잡이 잔의 가격은 수십만 원에서 수백만 원 수준이었다.
그중 100여 점을 엄선해 소개하는 ‘아르카익 뷰티–삼국시대 손잡이 잔’ 전시가 서울 사간동 현대화랑에서 16일까지 열린다. 오늘날 머그잔의 원형, 1500년 전 손잡이 잔은 음료나 차를 마실 때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당대 사회에서 전용 제기를 갖춘 제의(祭儀)와 음다(飮茶) 문화가 상당한 발전을 이뤘음을 보여준다. 그리스·로마에서 영향받은 이 독특한 기물을 박 교수는 “구체적으로 만지고 애무하는 물적 존재”로 표현했다. 쥐어야 하기 때문이다. 방탄소년단 리더 RM 역시 재빨리 다녀가 그 물성을 인스타그램에 공유했다.
전시작 일부를 추려 정리한 책 ‘삼국시대 손잡이 잔의 아름다움’(아트북스)도 다음 주 출간된다. “동시대 미술에서 벅찬 감동을 받기란 상당히 드물고 어렵다. 그럴 때 나를 구원해주는 것이 소박한 우리 골동품이다. 선인들이 만든 작고 아담하고 기품 있는 물건들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