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대표 미술상(商) 국제갤러리가 12억원 상당의 작품 손상을 이유로 법정에 서게 됐다. 세계적 설치미술가 도널드 저드(1928~1994)의 작품을 관리하는 미국의 저드 재단 측이 한국의 국제갤러리와 국제갤러리 가족 회사인 뉴욕 티나킴갤러리를 상대로 맨해튼 대법원에 고소장을 제출한 것이다. 미술계 거물들이 엮인 이 송사를 데일리비스트·아트넷뉴스·아트뉴스 등 미국 매체들이 최근 일제히 보도했다.
문제의 작품은 저드가 1991년 완성한 ‘무제 91-86′이다. 알루미늄과 투명 아크릴 유리로 제작된 네모난 상자가 벽면에 부착된 형태의 설치작으로, 재단 측이 2015년 국제갤러리에 위탁했다. 이를 국제갤러리 창업주의 장녀가 운영하는 티나킴갤러리가 그해 뉴욕 프리즈 아트페어에 출품했다. 이후에도 여러 아트페어에 내놨지만 작품은 팔리지 않았고, 위탁 계약은 2018년 종료됐다. 그러나 작품이 다시 재단에 돌아왔을 때 심각한 훼손이 발견됐다.
그 훼손은 바로 사람의 지문(指紋)에 의한 것이었다. 쉽게 자국이 남는 알루미늄 재질의 작품 표면이 지문 탓에 부식됐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이 예술품 취급 시 장갑을 끼는 이유도 손가락의 염분 등이 얼룩을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데일리비스트에 따르면, 고소장에는 “표면에 지문이 묻을 경우 시간이 지나 지문의 기름기가 표면과 반응해 영구적인 흔적을 남길 수 있다”고 적시돼있다. 작품 상태에 문제가 생겼음에도 갤러리 측의 신속한 처리와 연락이 없었고 “거의 확실히 되돌릴 수 없는 데미지로 더는 해당 작품을 판매할 수 없게 됐다”는 것이 저드 재단 주장이다. 작품가는 85만달러(약 12억원)로 책정돼 있다.
피해 보상 차원에서 갤러리 보험사 측은 작품 시세의 80%(68만달러)를 지불했으나, 재단은 나머지 20%에 달하는 17만달러와 이자 및 10만달러의 손해 배상금 등을 요구하고 있다. 도널드 저드는 미니멀리즘을 대표하는 작가로, 납작한 사각의 상자를 일정한 간격으로 벽에 붙인 조각 연작으로 특히 유명하다. 이는 작가가 6·25전쟁 참전 당시 접한 한국의 서랍장에서 큰 영감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