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서울 갤러리현대 개인전 당시 노은님 화가. 뒤쪽에 밝은 색채의 새 그림이 보인다. /이덕훈 기자

파독(派獨) 간호보조원 출신의 세계적 화가 노은님(76)씨가 18일 독일에서 암 투병 중 별세했다. 꽃이나 새 등의 단순한 형상으로 태곳적의 생명력을 표현해온 화가다.

전북 전주에서 9남매 셋째 딸로 태어났다. 스물한 살 때 모친을 잃었다. 방황하다 간호보조교육을 받고 경기도 포천군 면사무소에서 결핵관리 요원으로 일했고, 신문 광고를 보고 1970년 독일 함부르크로 떠났다. 함부르크 항구 근처의 시립병원은 근무 시간이 오전 6시부터 오후 1시까지였다. 말도 잘 안통하는 타지에서 그는 퇴근하면 방에 앉아 그림만 그렸다. 그러던 어느날 감기로 출근 하지 못한 노은님의 집을 찾아온 간호장이 그의 그림을 보게 되고, 병원에서 작은 전시회를 열어줬다. 관람객 중에는 함부르크 국립조형예술대학 한스 티만 교수도 있었다. “학교에 지원해보라”고 조언했다. 스물 일곱, 그렇게 예상치도 못한 미대생이 됐다. 훗날의 이야기지만, 노은님은 한국 여성 최초로 1990년부터 20년간 이 대학 교수를 지내게 된다.

1979년 대학 졸업 직후부터 전업작가로 활동했다. 현학적인 미술 이론과 그림에 물려있던 독일 화단은 어린아이 낙서 같은 노은님의 순수한 형상에 반색했다. 중요한 조력자가 바로 백남준이었다. 함부르크 대학 초대교수로 있던 백남준의 주선으로 1982년 국내 첫 개인전을 열었고, 1985년에는 독일 ‘평화를 위한 비엔날레’에 참여하는 등 여러 기회를 얻었다. 어느 겨울, 백남준을 공항으로 바래다 주는 길이었다. 시간이 늦을까 과속 운전하는 노은님에게 백남준이 말했다. “천천히 좀 가요. 노은님씨랑 나랑 이렇게 죽으면 한국 미술사에 큰 손해예요.”

노은님 1999년작 '마리타가 만든 정원'(40×49.8㎝). /가나아트
노은님 1990년작 '암초상어'(45×55㎝). /가나아트

물고기와 새, 꽃 등의 자연물을 소재로 생명을 표현해왔다. 생전의 고인은 자연의 세계를 그리는 이유를 그 안에서 고향을 발견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어렸을 적 친구였던 맑은 시냇물 속의 민물고기와 풀밭의 날 것들이 내 그림으로 줄줄이 나오는 것을 독일 사람들은 기이하게 봅니다. 그들은 꼼지락거리는 그 원초적인 생명체들에 매료되는 것 같아요. 사람은 결국 이렇게 나이 먹고 어른이 되어도 자기를 키워 준 유년의 환경으로부터 한 발짝도 못 벗어나는 것 같아요.”

화가는 “그림도 인생도 억지로 해서는 안된다”고 했다. 말년까지 독일 서남부 미헬슈타트의 고성(古城)에 작업실을 꾸려 매일 놀듯이 그리고 뭔가를 만들었다. “그림 그리기는 낚시 같다”는 게 철학이었다. 어느 날은 많이 잡히고, 어느 날은 안 잡힌다. 그래도 낚싯대를 드리우는 것이다. 지난 2019년 미헬슈타트 시립미술관에 그의 작품을 전시하는 영구 전시관이 개관했다. 거기 여전히 노은님의 생명이 깃들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