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아트바젤 파리+'에 출품된 마티스의 그림과 자코메티의 조각을 관람객들이 지나치고 있다. '아트바젤'은 세계 최고 수준의 아트페어 브랜드다. /로이터 뉴스1

세계 최고 미술장터 브랜드 ‘아트바젤’이 미국·홍콩에 이어 프랑스 파리까지 접수했다. 지난 19~23일 개최된 ‘제1회 아트바젤 파리+’다. 파리 대표 전시장 ‘그랑팔레 에페메르’에서, 수십 년 자리를 지켜온 프랑스 국가대표 미술장터 ‘피악’(FIAC)을 밀어내고 열린 첫 전시였다. 세계 3대 미술장터끼리도 경쟁은 살벌했다.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실장을 지낸 정준모 큐레이터가 현장 분위기를 전해왔다. –편집자 주

파리는 47년간 함께 해온 ‘피악’ 대신 ‘+’를 택했다. ‘파리+’는 프랑스 미술계가 애국심 대신 미래와 실리를 택했다는 점에서 루브르 등 박물관 법인화 이후 가장 획기적인 사건으로 여겨진다. 아트바젤 ‘VIP관리팀’ 42명의 위력은 역시나 대단했다. 과거 피악(FIAC)과는 차원이 다른 고객들을 파리로 불러 모았다. 유럽·미국은 물론 서울·타이베이·홍콩·파나마·뭄바이 등의 수퍼 컬렉터가 모여들었다. 프랑스 대통령 내외도 참석자의 일부였다. 수퍼 컬렉터에게 조언하는 ‘고문’ 격의 은퇴한 미술계 인사도 다수 보였다. 킹 달러를 쥔 미국 컬렉터들은 먹이를 찾듯 부스를 누볐다. 불어보다 영어가 주로 들렸다.

구겨진 파리의 자존심을 세워주려는 듯, 포트리에·뒤뷔페·아르망·뷔렌 등 프랑스 거장의 출품작이 자주 눈에 띄었다. 참여 갤러리는 156곳으로 그리 많지 않았으나, 작품 수준은 예년보다 높았다는 평가다. 현재 파리 퐁피두센터(제라르 가로스테·앨리스 닐)와 오르셰미술관(케힌데 와일리), 루이비통재단(조안 미첼) 전시 작가의 작품도 여럿이었다. 관심을 자연히 파리 미술계로 돌리려는 것으로, 의도했다면 치밀한 상술이다. 최근 ‘프리즈 서울’ 개최로 국제 시장의 위세를 절감했던 우리가 주목해야 할 지점이다.

'아트바젤 파리+' 첫날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이 자국 갤러리인 페로탕 부스를 둘러보고 있다. /아트바젤

신진 작가를 위한 배려도 눈길을 끌었다. 젊은 작가를 앞세운 신생 16화랑을 주요 포스트에 세운 것이다. 부스 비용 절반은 프랑스 라파예트백화점이 지원했다. 내년 ‘라파예트 안티시페이션’ 전시에 참여하는 조건이다. 대형 갤러리들은 VIP 오프닝에서 유례없는 매출을 올렸다고 소리쳤다. 다소 거품이 있겠지만 신뢰가 가는 건 어제와는 다른 작품이 걸려 있었기 때문이다. 총 매출은 스위스 아트바젤에 못 미치고 거래 속도도 느렸지만, 문의가 많아 내년을 기대한다는 화상이 대부분이었다. 방문객은 총 4만여 명이었다.

센강의 보트 위에서는 미술·영화·패션·디자인 등 학제 간 융·복합을 위한 패널 9명과 연사 32명이 참여한 3일간의 ‘대화’가 열렸다. 튈르리 공원과 방돔 광장 등 공공 장소에 조각품 20여 점이 놓였고, 위성 아트페어 4건(파리 인터내셔널·아시아 나우·모던 아트페어·AKKA)도 동시에 열려 파리를 미술의 도시로 복원해 ‘아름다운 시절(Belle Epoque)’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결말은 아무도 모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