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이 거꾸로 걸린 것 같은데요.”
최근 미국 사진가 비비안 마이어(1926~2009) 사진전을 찾은 관람객 A씨는 아트숍에서 전시 도록을 보다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방금 전시장에서 본 사진 작품이 도록에는 반대로 실려 있었던 것이다. 잎이 무성한 나무 위에 종이 한 장이 올라앉은 1965년 흑백 사진으로, 전시장에서는 나뭇잎이 중력을 거슬러 솟구친 상태였다. 직원에게 이를 알리자 “작품을 돌려서 걸겠다”는 대답을 들었다. A씨는 “사과나 설명도 없이 편의점 물건 진열하듯 대하는 태도가 너무 안일하다고 느꼈다”며 “관람객 기만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고 말했다.
1일 본지 취재 결과, 거꾸로 걸린 사진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거리에서 우연히 포착한 신문지 연작(1973) 중 하나가 홀로 반대로 걸려 있었고, 바닥에 놓인 둥근 거울에 자기 얼굴을 비춰보는 소녀 사진(1953)도 마찬가지였다. 지난해 11월 프랑스 파리 전시 당시에는 똑바로 걸려 있던 작품이다. 사진은 구도가 핵심이고, 구도가 뒤집히는 순간 전혀 다른 착시가 발생한다. 게다가 비비안 마이어는 관련 책과 영화가 나올 만큼 대중적으로도 친숙한 작가로, 작품 대부분이 일상의 거리 풍경이기에 주의를 기울였다면 나오기 어려운 실수다. 전시는 지난 8월부터 열렸고, 약 6만명이 다녀갔다. 전시 기획사 빅피쉬씨엔엠 관계자는 “지난달 벽면 보수 후 재설치 과정에서 혼선이 있었던 것 같다”며 “2일부터는 원래 방향으로 볼 수 있도록 조치했다”고 말했다.
국립 기관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이중섭 전시에서 그림 ‘아버지와 두 아들’(1954)이 한 달 넘게 거꾸로 걸려 있었다는 사실이 지난 9월 본지 보도로 세상에 알려졌다. 인물과 그림자 위치 등을 고려했을 때 그림이 거꾸로 된 것 같다는 전문가의 지적이 이어지자 미술관은 그림을 슬그머니 뒤집어 걸었다. 이미 발행한 전시 도록 등이 상당수 팔린 뒤였지만, 관람객을 위한 어떤 공지나 설명도 없었다. 지난달 국정감사에서 비판이 빗발치자 윤범모 관장은 “쭉 논란이 돼 온 작품”이라며 “이중섭 화풍의 특징은 원형 구도여서 상하가 불분명한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러나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실장을 지낸 정준모 큐레이터는 “그런 논리라면 그림을 다시 바꿔 건 이유는 무엇이냐”고 꼬집었다.
지난해 12월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프랑스 야수파 화가 앙리 마티스 전시에서도 1953년 작 ‘배’(Le Bateau)가 뒤집혀 걸리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잇따르는 허술한 전시 행태가 자칫 미술과 관람객을 멀어지게 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장준석 미술 평론가는 “유사한 실수가 잦아지면 현대미술에 대한 반감이 커지게 된다”며 “전시 기획자는 단순 티켓 장사가 아니라 미술 저변 확장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만큼 더 큰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현대미술이 애매하고 변칙적인 경우가 많긴 하지만, 그럴수록 최소한 작품 제시의 정확성은 보장돼야 한다는 것이다.
해외에서도 비슷한 사고가 종종 벌어진다. 1961년 뉴욕현대미술관(MoMA)에서도 마티스 ‘배’가 방향이 바뀐 채 47일 동안 걸려 있었다. 이를 알아챈 건 일반 관람객이었다. 지난주에는 몬드리안의 1941년 작 ‘뉴욕 시티1′이 77년 동안 거꾸로 걸려 있었다고 독일의 한 큐레이터가 주장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