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가 늙어 나목(裸木)이 된다. 잎이 사라지자 버려진 것처럼 보인다.
그 가장 나중의 나무를 조각가 정현(66)씨는 그려내고 있다. 파주 작업실 근처 늪지대에 자생하는 고목들을 오래 바라봤고, 몇 번의 붓질로 종이에 무의식을 터뜨리다보면 나무 형상이었다. “예전에는 뾰족 솟은 가지에 집중했다면 지금은 기둥 위주로 단순하게 그리게 된다”고 정씨는 말했다. 서울 인사동 토포하우스 단체전(13일까지)에서 선보이는 신작 ‘무제’처럼, 가벼운 건 떨어내고 중심만 남겼다. 평생 인간의 모습을 추구해온 조각가, 그래서 그의 나무는 인체처럼 보인다.
상처 입은 소재를 조각 재료로 삼아온 정씨는 흔히 침목(枕木)의 작가로 불린다. 기찻길에 깔려 열차의 하중을 견디는 침목을 깎아 사람처럼 세웠다. 2016년에는 프랑스 파리 팔레루아얄 정원에도 그의 침목 조각 ‘서 있는 사람’ 50여 점이 들어선 적이 있다. 말없이 고통을 삭이는 나무, 침목이 침묵의 오기(誤記)처럼 읽힌다. 나무 드로잉 연작은 그 자가치유의 연장선에 있다. 서울 성북구립미술관 개인전(12월 4일까지)에 걸린 2014년작 드로잉 ‘무제’는 분노로 머리가 터져나가는 듯한 얼굴이다. “무척 화가 치밀었을 때 그린 것 같다”고 했다. 시간이 지나며 분노는 식었고, 선은 간결해졌다.
물감 대신 콜타르로 그린다. 석탄이 가열되고 남은 일종의 찌꺼기다. 1998년 파리 유학 시절 우연히 마주한 이 물질이 “가장 밑바닥의 감정처럼 느껴졌다”고 말했다. 소외에 대해 깊이 고민하던 그는 이 도료로 “내장에 붙어있던 속내”를 해방시키기 시작했다. 종이에 닿은 콜타르는 나무의 색을 냈다. “고독과 상실에 너무 오래 머물면 안 된다. 그 파괴의 감정을 딛고 일어서야 한다.” 그림 속 나목이 쓰러지지 않고 서있다.
아예 타버린 나무도 있다. 성북구립미술관에 놓인 설치작 ‘무제’(2022)는 3년 전 강원도 고성 산불 당시 전소된 나무 더미를 가져와 울타리처럼 부려 놓은 것이다. 화마(火魔)는 나무에게 닥칠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지만, 작품의 메시지는 절망이 아니라 회복이다. 불탄 나무에 더욱 열을 가해 광택을 내고, 금속 조각도 군데군데 박아 넣었다. “예전에는 숯더미를 가공 없이 전시하곤 했는데 올해는 그 안에서 보석처럼 반짝이는 뭔가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작가는 말했다.
지난해 홍익대 정년 퇴임 후 올해만 네 번의 전시를 열 정도로 활발한 정씨의 나무는 점차 다음 단계를 향하고 있다. 지난 9월 서울 사직동 최정아갤러리 개인전 당시 출품한 드로잉 ‘무제’(2022)에는 고목 위에 초록의 오일바(oil bar)로 새싹을 올렸다. “지난해 태어난 손녀에게서 느낀 최초의 신비 덕분”이라고 했다. 오는 11일에도 새 전시가 예정돼 있다. “시련을 견딘 사물에는 생동감이 있다”며 “나는 나이 들었지만 살아있다”고 말했다. 겨울에도 나무가 건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