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 샤갈 1911년작 유화 '아버지'(80.3×44.5㎝). /필립스

걸인도 술꾼도 아니다. 이 남자의 정체는 아버지다.

러시아 태생의 프랑스 화가 마르크 샤갈(1887~1985)의 아버지는 청어 장수였다. 악취 속에서 무거운 생선 궤짝을 날랐다. 손에 쥐는 건 한 달에 20루블 남짓. 9남매 중 장남이었던 샤갈의 회고에 따르면 “지옥 같은 일”이었다. 그럼에도 매일 아침 6시에 유대교 회당으로 가 기도했다. “아버지에 관한 한 모든 게 수수께끼 같았다… 이 순박한 남자와 친밀한 건 오직 나뿐이었다.” 샤갈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물고기 도상은 이 과묵한 남자를 향한 사랑에서 비롯한 것이다.

1911년 고국을 떠나 파리로 온 샤갈은 ‘아버지’를 그렸다. 샤갈 전기를 쓴 프란츠 메이어가 “원초적 힘으로 가득한 맹렬한 그림”이라 평했듯 파리에서 샤갈의 화풍은 일변한다. 새로운 도시에서 영향받은 강렬한 색감이 화면을 구성한다. 파리의 활기찬 분위기와 고향의 향수가 동시에 드러나는 것이다. 특히 배경에 놓인 꽃의 이미지가 인물의 활기를 돕는다. 화사하게 피어나는 ‘아버지’를 통해 아들은 변화를 시작하고 있다.

이 그림이 15일(현지 시각) 뉴욕 필립스 경매에 출품돼 약 100억원에 낙찰됐다. 우여곡절이 깊다. 폴란드 악기 제작자 데이비드 센더가 구매해 소장했으나 나치(Nazi)에 약탈당했다. 그림에 애착이 컸던 샤갈은 1953년 무렵 ‘아버지’를 다시 손에 넣었으나, 별세 이후인 1988년 국가에 귀속됐다. 그러다 올해 초 프랑스 국회가 나라에 소장된 나치 강탈 미술품 15점의 반환을 승인하면서 그림은 원 소장자 측에 돌아갔다. ‘아버지’는 15점의 반환품 중 경매에 나온 첫 사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