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해머링맨’이 산타 모자와 양말을 착용한 채 망치질을 하고 있다. 현대인의 노동을 상징하는 이 작품은 일반 회사원처럼 성탄절 등 빨간날에는 쉰다. /남강호 기자

서울에서 20년 근속(勤續)했다. 아침 8시부터 저녁 6시까지.

광화문 일대 회사원이라면 누구나 한 번은 봤을 대형 조각 ‘해머링맨(Hammering Man)’이 설치 20주년을 맞았다. 35초에 한 번꼴로 망치질을 하는 높이 22m짜리 거대 조형물이다. 올해 20년과 연말을 기념해 산타클로스 모자와 양말을 착용했다. 이 남자의 복장이 달라진 건 10년 만이다. 해당 작품을 소유·관리하는 태광그룹 세화예술문화재단 측은 “공공 미술품을 통해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일상 속에서 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마련한 프로젝트”라고 했다. 달라진 ‘해머링맨’은 내년 1월 15일까지 한시적으로 운영된다.

드론을 띄워 공중에서 바라본 '해머링맨'. 이 대형 조각 역시 바삐 오가는 직장인들을 바라보고 있다. /세화예술문화재단

미국 조각가 조너선 브로프스키(80)의 연작이다. 1976년 우연히 본 튀니지 구두 수선공의 사진을 토대로 제작한 것이라 한다. 1979년 뉴욕 전시회에서 3.4m 높이의 첫 작품이 공개된 이래 작가의 분신이 됐고, 시애틀·프랑크푸르트·바젤·나고야 등 11개 도시에 잇따라 놓였다. 근로의 나라답게, 한국 버전의 체구가 세계에서 제일 크다. 몸무게 50t, 망치를 든 오른팔만 해도 4t에 달한다. 2002년 종로 흥국생명빌딩 앞에 자리 잡은 이래 도심의 랜드마크가 됐다. 작가가 서울에서 직접 설계를 지휘한 이 작품은 노동의 숭고한 가치, 그럼에도 고독한 현대인의 일상을 표상하며 끊임없이 몸을 움직인다.

이 남자는 한 달에 두 번씩 매년 7000만원 상당의 건강검진을 받는다. 주말과 공휴일은 쉰다. 그러나 기념품이 제공되는 관람객 포토존으로 운영되는 통에 20년 근속 안식년 휴가는 주어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