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나를 영겁에 묶어두는 게 사진이라지만, 작품 수명은 길지 않다. 암실에서 인화된 까닭에 열화(劣化)가 쉽기 때문이다. 특별 관리가 필요하다.
한국 첫 사진 전문 미술관 한미사진미술관이 내년 20주년을 맞아 명칭을 ‘뮤지엄 한미’로 바꾸고, 서울 삼청동에 ‘뮤지엄한미 삼청’을 개관하면서 처음 시도한 것이 바로 ‘냉장 수장고’. 기온 5도, 습도 35%가 유지되는 이 공간에는 여성 사진가 줄리아 마가렛 카메론(1815~1879)의 1867년작 ‘허버트 부인’ 등이 걸려 있다. 한 번도 국내에 실물 공개된 적 없는 작품이다. 김지현 큐레이터는 “미술관에 소장된 근현대 사진만 2만여 점”이라며 “항온·항습 시스템을 통해 작품의 생명을 향후 최대 500년까지는 보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수장 공간 효율화를 위해 모기업 한미약품으로부터 약재 저장 노하우를 전수받아 수장고에 승강기까지 설치했고, 일반 관람객 탐방 프로그램도 준비 중이다.
냉장 수장고 바로 옆에는 저온 수장고(기온 15도·습도 35%)가 있다. 냉장 수장고와 합치면 약 100평 규모다. 이우 공(公)의 결혼 앨범 등 희귀작을 보관하는 동시에, 보이는 수장고로도 기능한다. 신원 미상 사진가가 촬영한 고종 황제 초상 및 흥선대원군 초상, 우리나라 1호 여성 사진가로 알려진 경성사진관 이홍경이 발표한 여인 초상까지 희귀 원본 12점을 무반사 유리를 통해 수장고 건너편 복도에서 볼 수 있다. “유폐하기보다 대중에게 다가가려는 상징적 전시 장치”라는 설명이다. 특히 조선에 처음 사진을 도입한 문인 황철이 1880년대 찍은 원각사지 10층 석탑 풍경은 최초 전시다.
한국사진사(史)를 개괄하는 미술관 신축 개관전도 내년 4월 16일까지 열린다. 한국에서 처음으로 사진 전시를 열었던 정해창(1907~1968)을 시작으로, 한국식 모더니즘 사진의 별칭 ‘신흥사진’을 거쳐, 리얼리즘과 현대 사진으로 이어지는 맥락이다. 이명동·이형록·주명덕·한영수·황규태 등의 감각적 앵글이 당대를 증언하고 있다. 대미는 임응식(1912~2001)의 1982년 국립현대미술관 회고전 출품작이 장식한다. 이를 기점으로 사진이 한국에서 비로소 미술관 전시와 소장의 대상이 됐기 때문이다. 뮤지엄한미 측은 “사진사 정립을 위한 마지막 기회라는 책임감으로 준비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