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세계를 건설한다.
그 세계는 지구와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가상의 왕국과 같다. 만화에서 뛰쳐나온 ‘포켓몬스터’와 ‘뽀로로’가 노닐고 ‘브레드이발소’가 차려지고, 꿈속에서나 가능한 동식물의 생태계가 펼쳐진다. 아이들이 점토로 조물조물 쌓아올린 미래의 풍경이 약 100평 규모의 북서울미술관 지하 1층 어린이갤러리 전체로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아트랜드’다.
세계적 설치미술가 서도호(61)씨의 제안에서 시작됐다. 사실은 그의 두 딸이 시작했다. “크리스마스 선물로 큰딸에게 유아용 점토를 사줬는데 몇 년째 혼자 애지중지 뭔가를 만들며 놀더라. 이후 둘째가 합류했다. 덩어리가 커져 나도 가끔 일손을 도왔다. 걔네가 작가였고 나는 조수였다.” 아이들과의 첫 협업, 그것을 미술관으로 옮긴 것이다. “팬데믹으로 제일 큰 타격을 받은 게 어린이다. 맘껏 못 노니까. 집에서 애들과 ‘아트랜드’에 빠져들며 세상만사 다 잊곤 했다. 어찌 보면 치유였다. 공유하고 싶었다.” 작품에 참여한 아이들은 서씨 가족과 공동 저작권자가 된다. 전시명이 ‘서도호와 아이들’인 이유다.
관람객이 작가가 돼 전시작을 완성하는 ‘참여·과정형 작품’은 이 미술관으로서도 초유의 시도다. 북서울미술관 측은 “3월 전시 종료 후 ‘아트랜드’ 일부를 해외 미술관으로 옮겨 외국 아이들이 공사를 잇는 방안을 논의 중”이라고 했다. 엄밀히 말해 ‘아트랜드’는 작품이라기보다 축적에 가깝다. 이 세계의 목표는 ‘잘 만드는 것’이 아니다. “전시 초반 아이들이 가장 많이 한 질문이 ‘진짜 여기에 점토 붙여도 돼요?’였다. 그 짧은 인생에도 얼마나 제약이 많았길래…. 깔깔대는 목소리를 들으면 전시하길 정말 잘했다고 느낀다.” 지난 8월부터 지금껏 어린이 약 1만명이 ‘아트랜드’를 축조했다. 좌대(책상)는 처음 29개에서 61개로 늘었고, 이마저 모자라 땅바닥과 벽면까지 점토로 채워지고 있다.
서씨는 이번 전시로 “작가·관람객의 경계를 허물고자 한다”고 말했다. “예전부터 미술관의 문제를 고민해왔다. 애들은 미술관만 가면 주눅이 든다. 만지지 마라, 뛰지 마라, 조심해라…. 애들이 제일 싫어하는 곳이 미술관일 것이다. ‘작가’는 천재나 특수한 존재가 아니다.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다. 아이들은 작가로 대접을 받을 자격이 있다. 어른이 따라 하고 싶어도 못하는 천진한 창의성이 있다.” 그래서 전시장에서는 누구도 간섭하지 않는다. “아버지(서세옥)가 늘 말씀하셨다. 미술은 가르쳐서 되는 게 아니다. 나도 마찬가지 생각이다. 내 나름의 격려는 ‘하게끔 놔두는 것’이다.”
그래서 서씨는 전시명이 ‘서도호와 아이들’이 아닌 ‘아이들과 서도호’여야 한다고 주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