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ART SG’ 출품작인 호주 작가 샘 징크스의 사실적 조각 ‘앉아있는 여인’을 관람객들이 바라보고 있다. 올해 아시아에서 처음 열린 대형 아트페어다. /ART SG

새해, 전 세계 미술 장터의 서막은 아시아가 열었다. 동남아 최대 아트페어를 표방하며 지난 12일 개막한 제1회 ‘ART SG’(싱가포르 아트페어) 때문이다. 아트페어 프랜차이즈 귀재로 불리는 기획자 매그너스 렌프루가 공동 창립한 행사로 “동남아는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경제적 본산”이라는 기대를 감추지 않았다. 세계 최고 수준의 아트페어 ‘아트바젤’ 모기업이 지난해 ‘ART SG’ 지분을 15% 사들였고, 경매회사 소더비가 15년 만에 싱가포르에서 경매를 재개하는 등 제반 환경도 크게 들썩였다. 가고시안 등 초호화 갤러리 160여 곳이 페어에 합류해 그 열기를 증명했다.

그래서 ‘ART SG’는 올해 미술계 전망의 시금석이었다. 쾌적한 금융·관광 인프라, 중국 최대 명절 춘절(春節)을 앞둔 대목, 3월까지 열리는 ‘싱가포르 비엔날레’ 등이 맞물려 이목이 집중됐다. 독일 화가 안젤름 키퍼의 약 21억원짜리 그림 판매 등의 실적이 발표됐으나 초고가 작품 판매는 드물었고, 예상보다 썰렁한 분위기였다. 지난 15일 폐막한 행사의 관람객은 총 4만여 명으로 집계됐다. 한 국내 갤러리 대표는 “참가 명단은 화려했지만 여타 아트페어와 차별점을 발견하지는 못했다”며 “국제 정세 불안 속에서 자국 컬렉터가 탄탄하지 않은 한계도 노출됐다”고 말했다. 단순히 유명 갤러리가 여럿 포진한다고 성공이 보장되는 아트페어 방정식이 더는 유효하지 않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올해, 아시아 미술 패권을 둘러싼 각축전이 본격화된다. 싱가포르를 시작으로 홍콩·대만·서울이 굵직한 아트페어를 잇따라 개최하며 승부수를 띄운다. 이른바 ‘아시아의 네 마리 용’이 꿈틀대는 것이다. 3월에는 홍콩이 ‘아트바젤 홍콩’으로 기지개를 켠다. 코로나로 인한 호텔 격리 의무 조치 해제 이후 첫 행사인 데다, 정치적 불안정성으로 아시아 미술 1번가의 입지가 흔들린 만큼 전략의 방점을 ‘아시아’에 찍은 모양새다. 최근 참가 갤러리 명단을 발표한 주최 측은 “갤러리 3분의 2가 아시아 지역에서 활동한다”며 “중국 본토와 일본·한국·대만 갤러리가 계속 강력한 입지를 확보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다만 “시진핑 연임 이후 사회 혼란과 코로나 사태가 심각해지면서 부자들이 돈 풀 여건이 안 될 것”이라고 한 미술계 인사는 말했다.

최근 아시아에서 가장 큰 경제 성장률을 기록한 대만은 5월 ‘당다이(當代) 아트페어’를 연다. 2019년 시작된 신생 페어다. 올해 ‘당다이 아트페어’ 참가를 결정한 국내 한 갤러리 대표는 “‘ART SG’에서도 대만 지역 컬렉터가 상당수였는데 최근 경제 호황을 타고 미술계의 영향력을 확장하려는 야심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한 미술계 인사는 “국내 아트페어에 진출하려는 대만 갤러리의 문의도 작년보다 상당히 많아졌다”고 말했다.

역시 가장 뜨거운 지역은 서울이다. 지난해 제1회 ‘프리즈 서울’로 각광이 집중됐고, K콘텐츠의 확장으로 서울의 매력도 급상승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좌판만 요란했을 뿐 실속은 못 챙겼다”는 반응이 적지 않다. ‘프리즈’에 가려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국산 토종 아트페어 ‘키아프’(KIAF)가 그 예다. ‘프리즈’의 국내 진출에 앞장섰던 도형태 갤러리현대 대표는 “‘프리즈’ 등의 VIP 관리 전략을 적극 연구해 적용하겠다”고 말했고, 황달성 한국화랑협회장은 “서울의 장점은 다른 아시아 국가보다 월등한 소프트 파워”라며 “한국관광공사와 협의해 ‘키아프’ ‘프리즈’ 일정에 맞춰 공연·축제 등을 개최해 방문의 이유를 늘리겠다”고 말했다.

일본도 바짝 긴장한 양상이다. 현대미술에서 뒤처져있다는 인식이 강한 지역이지만, 올해 7월 새 아트페어 ‘도쿄 겐다이(現代)’로 명예 회복에 나선다는 복안. 경쟁은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