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태국 작가 리크릿 티라바닛과 제주도민들이 백김치를 담그며 이야기 나누고 있다. 10년 전 미국 컬럼비아대학 예술대학원에서 티라바닛을 사사한 이유진 작가가 큐레이터로 참여해 진행했다. /제주비엔날레

요리도 작품이다. 재료를 다듬고, 정성을 쏟고, 이를 나누는 과정이 미술관에 놓이는 작품의 생애와 다르지 않다.

태국 유명 설치미술가 리크릿 티라바닛(62)이 올해는 김장에 도전했다. 전시장에서 직접 ‘팟타이’ 같은 음식을 만들어 관람객과 나눠 먹는 퍼포먼스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작가의 제주비엔날레 특별 행사로, 이번엔 제주도민 50여명과 함께 지역 명물 ‘감귤 백김치’를 담근 것이다. 텃밭에서 채소를 뽑고, 귤을 갈아 넣고, 절인 배추를 제주 옹기에 넣는 약 3시간짜리 작업. 작가는 “흙에서 나온 먹거리가 다시 흙으로 빚은 그릇에 담기는 순환이 흥미로웠다”고 했다. 이 퍼포먼스는 귤 창고를 개조한 ‘미술관옆집 제주’에서 지난 20일 열렸다.

리크릿 티라바닛이 제주도민들과 함께 담근 귤 백김치. /제주비엔날레

생태 미술이라는 비엔날레 취지와 맞닿긴 하나, 이것이 왜 예술인지 의아할 수도 있다. 본지 인터뷰에서 티라바닛은 “음식은 사람들을 앉게 하고 서로 마주하게 하는 일종의 플랫폼”이라며 “내게 예술은 우리를 보다 가깝게 해주는 단순하고 일상적인 활동, 대화와 교류 속에 자리한다”고 말했다. 그가 30여 년간 진행해 온 ‘관계미학’(Relational Aesthetics)의 핵심을 “사람들이 모든 과정을 함께하는 김장의 의미”가 관통하는 것이다. 김장을 하며 사람들은 서로 손을 주고받고, 공동의 목표 의식과 즐거운 기다림을 체험하게 된다. “내가 만들고 싶은 건 평소엔 인식하지 못했던 것을 경험케 하는 것이다.” 이번 행사 제목은 ‘예술은 끝났다! 우리와 함께 백김치를 담그자’였다. “예술이 끝났다는 말은 맞는 말이다. 예술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뉴욕현대미술관(MoMA) 등에서 개인전을 열었고 구겐하임재단 ‘휴고보스상’을 받았다.

지난 2010년 태국에서 열린 타라바닛 개인전 풍경. 작가(맨 왼쪽)가 음식을 조리하고 있다. /100 Tonson Gallery

이 같은 음식 퍼포먼스를 통해 서구 중심의 미술 개념에 반기를 들어왔다. “사실 예술은 서구적 개념이다. 우리는 서양인이 아니고 고로 미술계의 중심도 아니다. 우리의 철학을 우리 스스로 소중히 여기고 서구가 이해하도록 만들어 모든 이들이 서구의 방식으로만 예술을 대하지 않음을 알려야 한다. 우리는 사물을 그저 바라만 보지 않는다. 우리는 사물과 함께살고, 사물과 함께 즐긴다. 그것이 제주 옹기가 피카소 그림 못지않게 가치 있는 예술이라 생각하는 이유다.” 제주비엔날레는 2월 12일까지. 김치는 이후에도 계속 익어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