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4년작 '황혼녘의 워털루 다리'(65.7×101.6㎝). /The National Gallery of Art

현대는 오염과 함께 온다.

산업혁명 당시 화가 클로드 모네(1840~1926)가 런던에서 그린 ‘워털루 다리’는 그 뚜렷한 증거다. 1904년 어느 저녁, 뿌연 공기 탓에 식별이 어려운 어두운 교량 골조 위로 띄엄띄엄 불빛만 반짝인다. 그래서 녹색 배경의 이 그림은 얼핏 화단(花壇)처럼 보이기도 한다. 풍경의 정밀한 묘사 대신 즉물적 인상을 옮긴 화풍, 인상파 거두의 이 아련한 색감은 그러나 도시의 심각한 대기오염 때문이었다.

소르본대학·하버드대학 연구진이 최근 모네 그림 38점을 연구해 도출한 결론이다. 공장 굴뚝에서 이산화황 등이 뿜어져 나왔고, 공기 중에 미립자 에어로졸(aerosol)이 가득 차면서 방사선이 분산돼 사물의 윤곽을 분별하기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모네의 초기작에서 그림 속 풍경의 가시성은 평균 24㎞였지만, 후기로 가면서 1㎞까지 떨어졌다. 연구진은 윌리엄 터너·제임스 휘슬러·카미유 피사로 등 다른 인상파 화가 4인의 작품 분석에서도 유사한 결론을 내렸다. 한마디로 일부 ‘오염된 사실주의’라는 얘기다. 지난달 31일 미국 국립과학원회보(PNAS)에 실린 내용이다.

모네의 시력 악화(백내장)가 화풍의 변모를 가져온 건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이 연구에 따르면 당대의 구역질 나는 공기 역시 새 장르와 명작의 탄생에 기여한 셈이 된다. 모네는 1900년 3월 4일 아내에게 보낸 편지에서 “런던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은 안개”라고 적은 바 있다. “일어나 단 한 조각의 안개도 없는 것을 보고 겁이 났다. 몸을 가눌 수 없었고 이제 내 작품은 모두 끝장났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곧 불이 들어왔고 연기와 연무가 돌아왔다.” 그것은 기실 스모그였으나 동시에 낭만의 영감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