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퐁피두센터(Centre Pompidou) 분관이 서울 여의도 63빌딩에 들어서는 것으로 확인됐다. 퐁피두센터는 루브르·오르세와 더불어 프랑스 3대 미술관으로 손꼽히는 유명 브랜드로, 세계적 명성의 미술관이 한국에 지점을 내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퐁피두센터 측은 한화그룹(한화문화재단)과 손을 잡고 2025년 63빌딩에 분관을 개관하기로 합의했다. 향후 63빌딩 운영 방안을 고민하던 한화 측과 아시아 진출을 전략적으로 추진하던 퐁피두센터 측의 입장이 맞아떨어진 결과다. 익명을 요구한 미술계 관계자는 “5년여 전부터 서울 유치를 추진했지만 코로나 사태로 결정이 늦어졌다”며 “현존 건물을 리모델링해 미술관으로 탈바꿈하는 방향도 의견이 일치했다”고 말했다. 한화 관계자는 “현재 세부 내용은 협의 단계”라며 말을 아꼈지만, 63빌딩 지하와 별관을 연결하는 방식으로 1000여평 규모(지상 4층까지)의 면적을 전시 공간으로 꾸밀 것으로 전해졌다.
퐁피두센터 해외 분관은 일종의 문화 프랜차이즈다. 이미 2015년 스페인 말라가, 2019년 중국 상하이에 퐁피두센터 분관을 설치했고, 최근 사우디아라비아와도 2027년 개관을 목표로 분관 설립 계약을 체결하는 등 전세계로 확장 중이다. 퐁피두센터 과거 전시를 수출하거나 소장품을 대여해주는 조건으로 보통 4~5년 단위 계약을 맺고 매년 브랜드 로열티 등을 받는 형식이다. 이번 서울 분관의 경우 추가 연장 계약을 전제로 매년 브랜드 사용료만 약 200만유로(약 28억원)를 지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바탕으로 연 2회 대규모 전시 및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할 계획이다.
서울 서남권 일대의 문화 지형도에도 큰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미술관이나 갤러리 숫자가 극히 적었던 지역이지만, 퐁피두센터라는 이름값이 미술 애호가들을 이곳으로 유인할 공산이 높기 때문이다. 프랑스 파리에 있는 퐁피두센터의 경우 연간 관람객 숫자가 코로나 사태 이전 300만명을 넘는다. 이 같은 문화예술의 관광 자원화를 위해 인천시·부산시 등 국내 지자체가 퐁피두센터 유치에 뛰어들었지만 고배를 마시게 됐다. 부산의 한 미술계 인사는 “지난 1월까지도 퐁피두센터 관장과 직접 만나 유치 관련 회의를 했는데 허탈하다”고 말했다.
해외 미술관 브랜드 수입에 대한 신중론도 나온다. 최근 영국 미술관 테이트모던과 중국의 푸둥미술관이 5년 단위 미술 프로그램 계약을 맺는 등 일련의 거래는 확산 추세지만, 이른바 문화 선진국이 분관을 수입하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이다. 상하이에서 활동하는 이용우 미술평론가는 “K콘텐츠가 전 세계로 뻗어나가면서 한국 문화에 대한 존중이 높아지고 있는 시점에 미술 장르는 오히려 그 반대인 모양새가 될 수 있다”며 “우리가 해외 브랜드를 빌려와야 할 정도로 부족한지 당위성을 질문할 때”라고 말했다. 63빌딩에 들어설 미술관 명칭은 ‘퐁피두센터서울 한화’(가칭)가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