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은 백지에 얼룩을 남기는 것이고, 이는 때로 항거의 행위와 같다.
1989년 베이징은 민주화운동이 한창이었고, 분기탱천해 상경한 세 남성이 톈안먼 광장에 걸려있던 마오쩌둥의 대형 초상화를 겨냥해 달걀을 던졌다. 달걀에는 페인트가 담겨 있었다. 노랑·빨강·파랑·검정 안료가 터지며 절대 권위의 용안에 총천연색 생채기를 남겼다. 이들은 현장에서 체포돼 반혁명 파괴 및 선동죄로 수감됐고, 당시 각각 종신형·20년·16년형을 선고받았다. 초상화는 곧 교체됐다.
이 저항의 얼룩을 중국 반체제 작가 아이웨이웨이(艾未未·66)는 잊지 않았다. 그리고 한 폭의 그림으로 제작했다. 작가가 선택한 재료는 레고 블록이었다. 레고는 놀이 도구이고 놀이는 독창적 자유를 의미한다. 권력의 경직성을 그 반대급부로 강조한 셈이다. 먼저 가로 230㎝, 세로 300㎝짜리 넓다란 금속 판에 흰 레고를 잔뜩 붙여 흰 캔버스처럼 꾸몄다. 이후 1989년 당시 초상화에 흩뿌려진 얼룩대로 레고를 조금씩 붙였다. 비판이 금지된 얼굴은 숨긴 채, 그 분명한 상처만을 재현한 것이다. 2019년작 ‘마오의 초상화에 남겨진 흔적들’이다.
이 문제적 작품이 서울 청담동 탕컨템포러리아트 개인전에서 4월 22일까지 전시된다. 여전히 표현의 자유가 봉쇄된 고국을 향한 날 선 목소리가 담겨있다. 최근 시진핑 3연임과 더불어 ‘백지(白紙) 시위’ ‘백발(白髮) 시위’ 등 중국 현지 민중의 대규모 함성이 잇따르는 시점에서 더 큰 의미를 획득한다. 제목처럼 이 작품은 명백히 체제 비판을 은유하지만, 중국에 공개되는 전시 서문에는 “미국 화가 잭슨 폴록이 선보인 액션 페인팅 등 미적 사조에 대한 연구”로 소개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아이웨이웨이는 영국 등지에서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아무리 틀어막아도 소리는 새어나온다. 흥미로운 점은 이번 전시가 열리는 탕컨템포러리아트가 베이징에 본관을 둔 중국 화랑이라는 점이다. 중화권 최대 규모 갤러리로, 대표 역시 중국인이다. 지난해 서울 개관전을 아이웨이웨이의 제자이자 역시 반체제 작가인 자오자오의 개인전으로 열기도 했다. 반동(?) 작가와의 잇단 협업에 의문부호가 붙는 이유다. 갤러리 관계자는 “신기하다는 반응이 많은 것을 알고 있다”며 “아방가르드 예술에 열려 있어 반중 작가와도 다수 교류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