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전시 때마다 타이틀 정하는 일에 고심을 하게 된다. 사실 실제 전시와는 크게 상관이 없는데도 그렇다. 이것저것 살펴보니 마침 나의 제1회 미술 전시회가 안국동 소재 한국화랑(없어졌음)에서 펼쳐진 게 1973년 내가 미국 가던 해였다. 그러니까 50년 전이다. 그래서 생긴 타이틀이 ‘조영남 미술화업 50년 기념‘ 이 된 거다.
잠깐 돌아보니 그때는 중세(?) 시절이었다.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지만 그때는 DDR 딴따라가 무슨 그림이냐 하던 때였다.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기획능력이 전혀 없다. 모든 건 믿거나 말거나 당시 서울미대 회화과 2학년생이던 ‘아침이슬’이라는 노랠 부른 내 친구였던 김민기의 머리에서 이루어진 거다. 군에서 제대 말년에 이르러 그려놓은 그림이 너무 많아진 거다.
나는 군에 있으면서 짬만 나면 윤여정(지금은 세계적인 스타에 오른)네 미아리 마룻바닥에 엎드려 그림을 그려대고 미대생이던 김민기는 내 옆에서 온종일 통기타를 쳐대고 그러니까 음대생은 그림을 그리고 미대생은 음악을 하고 그러다가 이 그림들을 어쩔까 했는데 김민기가 “전시를 하는 거지 뭐” 했고 나는 “가수 그림을 전시한다고?” 하다가 내 그림 두 점 가량을 당시 서울미대 교수였던 윤명로 화백과 김차섭 화백에게 보여주고 두 분 중 한 분으로부터 “넌 노래 안 했으면 화가가 됐겠다” 하는 격려를 받고 김민기가 전시를 기획했고 추천서를 누가 써줄까 하다 써줄 사람이 없는 걸 알고 김민기가 “할 수 없이 그럼 내가 써야지“ 하며 그 당시 추천서를 써줬다.
50주년 전시회를 열면서 한 가지 잘 된 건 믿거나 말거나 내 친구 김민기가 천재였다는 걸 맨 처음 알리는 기회가 된 것을 나는 무지 기쁘게 생각한다.
8월 쯤이면 내 이름으로 된 책 ‘쇼펜하우어의 콩 나와라 팥 나와라' 나올지도 모른다. 거기에서 내가 김민기는 내가 본 유일한 천재라는 걸 못 박았다. 그의 노랫말이 그렇고 학전 운영 스타일도 그렇고 무엇보다 그가 쓴 글 ‘조영남의 그림을 보고’라는 제목으로 된 책 추천서를 읽어보면 알게 된다.
쇼펜하우어, 니체, 키르케고르 등 20중반에 이름을 떨친 것 못지않게 우리의 김민기는 20대 초반이 그런 엄청난 업적을 들어낸 것이다. 이번 전시는 천재 김민기와 한때를 보냈던 늙은 형이 뒤늦게 펼치는 그림 전시회다." P.s. 이번 추천서는 사정이 여의치 않아 내가 직접 쓴 것임을 알린다./(조영남 작가노트)
'가수화가' 조영남(79)이 화가 생활 51주년을 기념한 전시를 서울 종로구 경운동 장은선갤러리에서 펼친다.
1973년 안국동 한국 화랑에서 첫 미술 전시회를 열었는데, 당시 서울대 미대 2학년 생이던 친구 김민기가 기획한 전시였다.
먼저 가수가 그는 노래 '화개장터'로 떴고, 이후 '화투 작가'로도 이름을 날렸다. 가수화가를 합친 '화수'라는 말을 만든 장본이기도 하다.
미술시장에서 '화수'로 인기를 끌던 그는 70세인 2015년 '대작(代作)' 사건 논란에 휩싸여 '화가냐 아니냐'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대작 논란'으로 첫 재판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뒤 5년 간 모든 활동을 중단하고 두문불출했다. 항소를 통해 2020년 무죄 판결을 받은 그는 먼저 개인전을 열며 화가로서 2막을 재개했다.
당시 그는 "논란 덕분에 스토리 있는 화가가 된 것 같다. 국가가 나를 화가로 키워준 것 같다"는 너스레를 떨며 전시를 잇따라 열었고 방송에도 복귀했다.
'화투작가'로 독보적인 존재감을 과시하는 그는 1973년 서울 인사동 한국화랑서 첫 개인전 후 50여 회 전시회를 열었고, 부산 현대미술관 ,LA아트쇼, 인사아트페어,광주비엔날레 특별전-한국특급전, 아시아 아트 페스티벌 등 600여회의 그룹전에 참여했다. 그동안 작업해온 작품은 약 2000여 점에 육박한다고 한다.
대표작인 '화투' 시리즈는 미국 유학 시절 향수에서 비롯되었다. 한국인들이 모이면 어김없이 화투를 치며 노는 것을 보고 오묘한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화투에서 마치 고향의 향수를 느끼며 즐거워하고, 또 외로움을 달래는 모습에서 착안한 '화투' 시리즈는 인생의 희로애락을 담았다.
장은선갤러리에서 오는 8월7일부터 여는 조영남 초대전은 '화업 50년, 화투짝 같은 인생'를 선보인다. 2012년 장은선갤러리와 인연으로 2021년에 이은 세 번째 전시다.
작품은 조영남스럽다. '어른아이'같은 순수함과 옹고집이 화투, 바둑판, 소쿠리에 담겼다. '옛날 사람'같은 추억과 향수를 소환한다. 소쿠리, 노끈 같은 입체적인 오브제를 꼴라주하는 설치작품까지 오브제성이 강한 회화다. '진짜 같은 그림'이 아니라 현실적 물체를 화면에 끌어들여 '일상이 예술'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전시는 8월23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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