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 회랑
대런 애쓰모글루 등 지음|장경덕 옮김|시공사|896쪽|3만6000원
코로나19로 중국 우한(武漢)에서 대규모 감염·사망 사태가 터지자 중국 당국은 다른 나라라면 감히 생각도 못 할 과감한 조치를 쏟아냈다. 시민들을 사실상 가택연금했으며, 밖에 나오지 못하도록 우한 상공에 드론을 가득 띄워 감시했다. 미국은 그 대척점에 있다. 방치에 가까운 대응으로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망자 수를 기록하며 지금도 허우적대고 있다.
코로나19 확산 사태와 각국의 대응은 국가의 역할과 시민적 자유를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국가가 집회와 예배를 무한정 금지하고, PC방과 노래방 영업을 중단시켜도 되는가. 식당에서 인적 사항을 적게 하고, 개인의 동선을 국가가 추적해 공개하는 것은 온당한가. 기본권 제한의 한계는 어디인가.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로 유명한 애스모글루와 로빈슨 두 저자가 이번엔 ‘국가 권력과 시민의 자유를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란 화두를 들고 돌아왔다. 전작에서 두 저자는 남북한을 비교하며 포용적 제도를 지닌 대한민국은 번영했지만, 착취적 제도를 가진 북한은 국가로서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포용은 번영의 충분조건이 아니다. 저자들은 이 책에서 한 나라가 번영하려면 국가 권력과 시민적 자유의 공존과 조화를 추구해야 한다고 말한다. 유감스럽게도 그것은 계곡 사이에 좁게 뻗은 회랑(回廊)의 형태를 하고 있다. 들어가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남아 있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지 않으면 회랑 밖으로 튕겨나간다.
저자들은 먼저 17세기 영국 철학자 홉스의 국가론에서 논의를 시작한다. 홉스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을 멈추기 위해 폭력을 독점하는 강력한 괴물(국가)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모두가 모두를 두려워하느니 차라리 리바이어던 하나만 두려워하는 게 낫다는 논리다.
저자들은 국가를 독재·부재·종이·족쇄 등 네 리바이어던으로 나눈다. 중국과 소련, 나치 독일은 ‘독재 리바이어던’이다. 중국은 미국보다 효율적으로 질병을 통제한 것처럼 보이지만, 국민을 감시하고 체포하며 심지어 살해하는 나라다. 또한 방역에 국민의 자발적 협조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에 아주 넓은 지역을 봉쇄했으며, 그로 인해 값비싼 경제적 대가를 치렀다고 지적한다. 독재 리바이어던의 근본적 한계는 국가 권력과 역량 사용에 시민 참여를 봉쇄해 혁신이 불가능하다는 데 있다. 혁신의 연료인 창의성도 기대할 수 없다. 소련이 해체된 것은 국민을 효과적으로 명령하고 통제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명령으론 창의성을 만들어 낼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저자들은 말한다.
‘부재 리바이어던’은 독재자의 등장을 막기 위해 아예 정치적 리더십의 싹을 자르는 사례다. 두 저자는 독재 리바이어던과 부재 리바이어던이 결합한 ‘종이 리바이어던’을 가장 해로운 국가 유형으로 꼽는다.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봉급만 챙기는 유령 공무원인 ‘뇨키’들이 득실대는 아르헨티나가 대표적이다. 이 나라 뇨키들은 국민 위에 군림하지만 막상 국가적 과제 앞에선 무기력하다.
오직 ‘족쇄를 찬 리바이어던’만이 번영의 좁은 회랑에 들어갈 수 있다. 책은 기원전 6세기 고대 그리스의 ‘솔론의 개혁’을 역사상 첫 사례로 꼽는다. 개혁의 핵심은 시민 사회의 토대인 자유인 육성이었다. 재화를 빌려주며 인신을 담보 삼는 관행을 금지했고, 평민들이 귀족을 상대로 법정에서 다툴 수 있도록 사법 제도를 정비했다. 압권은 오만법이다. 여성⋅어린이⋅노예라도 모욕하는 귀족에게 소송을 걸 수 있게 했다. 덕분에 시민의 정치 참여가 활발해졌다.
번영의 좁은 회랑에 안착하고 튕겨나가지 않으려면 시민 사회는 동화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레드 퀸처럼 죽어라 뛰어야 한다. 팬데믹의 확산, 벌어지는 빈부 격차, 만성적인 저성장에 지친 각국 시민은 강력한 국가 리더십을 갈망한다. 두 저자도 오늘날 국가 역량 강화는 피할 수 없는 과제라고 인정한다. 다만 국가의 힘이 과도해져 시민 사회를 압도하지 않도록 리바이어던을 잠시도 쉬지 않고 감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동서고금의 다양하고 생생한 사례를 이야기하듯 들려준다. 한국에 대한 애정도 듬뿍 담았다.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함께 달성하고, 코로나19에 성공적으로 대처한 비결로 한국 시민 사회의 역량을 높이 평가했다. 한국을 염두에 둔 조언은 아니지만, 개혁안을 경쟁하듯 내놓기보다 사회의 결집력 회복이 중요하다는 통찰도 눈길을 끈다. 어떤 논의도 생산적 결실을 보지 못하고 진영주의로 회귀하는 우리 현실을 돌아보게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