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소련 정권은 감옥에서 정치범 관리를 형사범들에게 맡겼습니다. 강도·강간 같은 범죄를 저지른 이들이 정치범을 모욕하며 때리고 일을 시켰다네요. ‘반(反)혁명 분자’는 잡범만도 못한 존재였습니다. 노벨 문학상 받은 러시아 작가 솔제니친이 ‘수용소 군도’(열린책들)에 썼습니다. 지난달 22년 만에 개정판이 나왔습니다. 모두 6권, 2300쪽에 달합니다.
1945년 8년형을 받은 솔제니친이 수용소에서 겪은 일과 다른 죄수들의 이야기를 모았습니다. 1973년 파리에서 출간해 소련 정권의 폭정이 세계에 알려졌지요. 솔제니친은 “이 역사와 진실의 전모를 한 사람의 글로 밝히기란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지만 “바닷물은 한 모금만 마셔도 그 맛을 알게 마련인 것”이라고 적었습니다.
이렇게 어두운 이야기를 굳이 읽어야 할까요. 이제 소련은 무너지고 없는데? 엄청난 분량에 기가 질리기도 하고요. 그렇게 생각하며 아무렇게 펼쳐 보다가 이런 대목에서 눈길이 멈췄습니다.
“차츰 나에게 분명해진 것은, 선악을 가르는 경계선이 지나가고 있는 곳은 국가 간도, 계급 간도, 정당 간도 아니고, 각 인간의 마음속, 모든 인간의 마음속이라는 것이다. (중략) 그때부터 나는 역사에서의 모든 혁명의 위선을 알았다.” 소련의 폭정을 알고도 침묵하는 지식인도 비판합니다. “이보시오, 버트런드 러셀과 장 폴 사르트르 선생! 철학자 양반들! 어째서 조사위원회를 열지 않습니까. 아마 내 말이 들리지 않겠지.’
혁명이니 개혁이니 외치는 이들의 위선이 드러나는데, 침묵을 넘어 지지하는 분들이 지금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