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가 사라진 팬데믹의 시대, 이들은 ‘칼보다 강한 펜’으로 용기와 위안을 썼다.

‘올해의 책 12’에 이어 ‘올해의 국내 저자 7’을 소개한다. 가나다순으로 과학 전문기자 강양구, 트레이더 김동조, 소설가 김숨, 국문학자 박희병, 동화작가 백희나, 소설가 정세랑, 미학자이자 논객 진중권이다.

출판, 문학, 학술, 미디어, 영화, 클래식, 공연, 패션, 문화재 등 다양한 분야를 취재하는 조선일보 기자 13명과 Books 필진 3명, 출판 전문가 4명 등 총 20명이 3명씩 추천하고 Books 팀이 최종 선정했다. 2019년 12월~2020년 11월 책을 낸 저자를 대상으로 했다. 백희나씨는 이 기간 신작은 없지만, 한국인 최초 알마상(아스트리드 린드그렌상)을 받아 많은 추천을 받았다.

♦선정위원 (가나다순)

◊기자

곽아람, 김경은, 김기철, 김성현, 박해현, 백수진, 신동흔, 양지호, 어수웅, 유석재, 이태훈, 최보윤, 허윤희

◊Books 필진

박소령 퍼블리 대표, 우석훈 경제학자, 장동선 뇌과학자

◊출판 전문가

백원근 책과사회연구소 대표,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표정훈 출판평론가, 한미화 출판평론가

2020년 올해의 저자들의 대표작

과학 저널리스트 강양구

과학의 품격

사이언스북스|448쪽|1만6500원

“과학이 승리할 것이다.”

코로나 백신을 개발한 화이자 뉴욕 본사 건물에 내걸려 화제가 된 이 문구처럼 올해는 과학의 힘이 그 어느 때보다 빛났다. 저널리스트 강양구는 과학기술과 사회와의 관계를 오래 고민해 왔다. 그 결과 풍성한 수확을 일궜다. 과학기술 담론의 균형을 묻는 ‘과학의 품격’이 작년 12월 발간됐고, 공저 ‘우리는 바이러스와 살아간다’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가 올해 출간됐다. 뇌과학자 장동선씨는 “불편하더라도 꼭 논의되어야 할 문제를 제기하고 지식을 전달했다”며 추천했다.

강양구는 독자에게 가장 사랑받은 문장을 골라달라는 요청을 하자 ‘과학의 품격’ 중 한 구절을 읊었다.

“듣기 좋은 의견에만 눈과 귀를 열어 놓고 살지는 않았나? 이 모든 것의 결과가 바로 ‘집단 바보’이고, 그것은 곧 민주주의의 위기다.”

2020년 올해의 저자들의 대표작

트레이더 김동조

모두 같은 달을 보지만 서로 다른 꿈을 꾼다

아웃사이트|480쪽|3만원

“가장 완벽한 정보는 당신이 아슬아슬하게 이긴 승리와 아슬아슬하게 진 패배에 있다. 그게 바로 당신 자신이다.”

김동조의 ‘모두 같은 달을 보지만 서로 다른 꿈을 꾼다’ 중 가장 화제가 된 구절이다. 글쓰는 트레이더로 이름난 그는 문학과 투자라는 어울리지 않는 두 세계를 아슬아슬하게 잇거나 왕복하며 글쓰기의 새로운 영역을 탐색하고 있다. 주독자층은 30대 남성. 김동조는 “트레이더라는 직업과 투자라는 세계가 대중에겐 익숙하지 않은데, 그런 세계를 쉽고 짧은 문장으로 풀어냈다는 점이 독자 마음을 움직인 것 같다”고 했다.

“투자하고 책을 읽고 운동을 하고 글을 쓰는, 정갈한 사람의 일기. 읽어도 읽어도 좋다.” 박소령 퍼블리 대표의 추천 평이다.

2020년 올해의 저자들의 대표작

소설가 김숨

떠도는 땅

은행나무|280쪽|1만3500원

“열차에 함께 실려가며 함께 슬퍼하고 함께 그리워하자, 하는 마음으로… 썼다.”

올해 동인문학상 수상작가인 김숨의 장편소설 ‘떠도는 땅’ 1937년 소련의 극동 지역에 거주하고 있던 고려인 17만명이 화물열차에 실려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된 사건을 소재로 한다. 김서해 은행나무 편집자는 “비극적 역사에 매몰된 인간의 숭고함을 담담한 문체로 풀어내며 ‘뿌리를 잃고 떠도는 존재들’에 대한 이야기를 완성시켰다”고 했다. 책은 전 연령대에서 고루 읽히며 2만부 팔렸다.

“새는 깨어나 다시 노래할 거라고, 그럼 사람들의 얼굴에 눈송이처럼 맑고 차가운 슬픔이 깃들고 사나워진 마음이 순해질 거라고…”라는 문장이 특히 사랑받았다.

2020년 올해의 저자들의 대표작

국문학자 박희병

엄마의 마지막 말들

창비|404쪽|1만6000원

“춥다, 옷 더 입어라.” “밥 문나?” “고마 가서 공부해라.”

구순의 어머니는 의식이 가물가물한 중에도 늘 아들 걱정이었다. 국문학자 박희병 서울대 교수는 ‘능호관 이인상 서화평석’ 등 역작을 내놓은 한국 고전문학 연구자. 말기 암과 알츠하이머로 호스피스 병동에 들어간 어머니를 1년간 간병하며 학자의 두뇌를 잠시 내려놓고 에세이스트의 심장으로 어머니의 마지막을 기록했다. 이지영 창비 교양출판부 부장은 “아들이라는 사적 자아와 인문학자라는 공적 자아를 무시로 넘나들며 삶과 죽음, 호스피스 의료의 윤리와 책임에 대한 생각을 개진했다”고 말했다. “가슴 절절한 노모 간병기로 공감력 일으킨 인문학자”라는 추천 평이 있었다. “집에 가자 어서 가자 이 손 잡고 어서 가자”는 엄마의 말이 독자들의 눈시울을 적셨다.

조선일보 Books가 선정한 2020 올해의 저자로 선정된 백희나의 '나는 개다'

동화작가 백희나

나는 개다

책읽는곰|48쪽|1만3000원

“그래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오면, 열심히 대답해 준다. 기억나지 않는다 해도, 우리는 가족이니까.”

백희나는 전화선 너머에서 지난해 4월 낸 ‘나는 개다’ 중 한 문장을 또박또박 읊었다. 태어나자마자 가족과 헤어져 낯선 곳에서 낯선 이들과 새로운 가족이 되는 개의 운명. 어디선가 동족의 목소리가 들릴 때마다 목청 높여 짖는 모습을 그린 이 장면이 올해 특히 위로가 되었다고 한다.

2020년은 그에게 롤러코스터 같은 해였다. ‘아동문학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상을 한국인 최초로 받았지만 대표작 ‘구름빵’ 출판사와의 저작권 소송에서 최종 패소했다. 백희나는 “할 만큼 했고 싸울 만큼 싸웠다. 다시 한번 힘을 내야 할 때”라고 했다.

백원근 책과사회연구소 대표는 “세계가 주목한 역대급 그림책 작가의 출현은 올해 한국 출판의 BTS급 수확”이라며 추천했다.

조선일보 Books 선정 '2020 올해의 저자' 정세랑의 대표작 '시선으로부터'.

소설가 정세랑

시선으로부터,

문학동네|340쪽|1만4000원

“소설이 현실과 연결될 때가 있는 것 같다. 복잡한 것을 복잡하게 이해하는 방식으로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올해가 ‘정세랑의 해’라 불리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정세랑의 답이다. “글 쓰는 사람들은 복잡한 걸 단순하게 말하고픈 욕구에 시달리는데 복잡한 세상을 축약하지 않고 그대로 전달하겠다는 의미”라고 했다.

근대 여성 예술가 심시선 일대기를 그린 그의 신작 ‘시선으로부터,’는 지난 6월 나와 10만부 팔렸다. 부하 직원 성추행 혐의로 고소된 박원순 전 서울시장을 여권이 감싸고 돌자 여성들은 ‘어떤 자살은 가해였다. 아주 최종적인 가해였다’는 소설 속 문장을 소셜미디어에 옮겨 적으며 저항했다. 2015년작 ‘보건교사 안은영’(2015)도 넷플릭스 드라마로 만들어지며 다시 주목받았다. “이 세계와 저 세계를 오가는 멀티태스커 이야기꾼의 행보가 무척 기대된다”는 추천 평이 있었다.

2020년 올해의 저자들의 대표작

미학자이자 논객 진중권

진보는 어떻게 몰락하는가

천년의상상|296쪽|1만7000원

“왕년의 최고 인기 작가가 드디어 사회과학계로 복귀했다. 좋든 싫든, 그의 입을 쳐다보지 않을 수 없다.”

경제학자 우석훈의 추천 평이다. 미학자이자 논객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조국흑서’로 불리는 공저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가 10만부 팔리며 공전의 베스트셀러가 된 외에도 ‘진보는 어떻게 몰락하는가’ ‘진중권 보수를 말하다’ 등 다작(多作)을 선보였다.

집권 여당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짚은 ‘진보는 어떻게 몰락하는가’는 “윤석열은 민주당 프로그램의 치명적 버그(오류)”라는 구절이 장안의 화제가 되며 11월 출간 이후 5쇄를 찍으며 2만부 발행됐다. 인터넷 서점 알라딘에 따르면 구매자 중 50대 남성 비율이 17.9%로 가장 높고, 40대 남성(14.9%)이 뒤를 잇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