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성 편향
존 티어니·로이 F. 바우마이스터 지음|에코리브르|392쪽|2만1000원
“자네들이 좋은 연인이나 배우자가 될 수 있는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나?”
미국 출신 사회심리학자이자 호주 퀸즐랜드 대학교 교수인 로이 바우마이스터가 어느 날 학생들에게 물었다. “저는 친절하고 이해심이 많습니다.” “성실하죠.” “똑똑한 데다 유머러스합니다.” “섹시해요!” 학생들이 자신의 ‘좋은 점’을 여럿 나열했지만 바우마이스터는 고개를 저었다.
“상대가 좋아하는 행동이나 말을 하는 것보다 싫어하는 일을 하지 않는 게 관계 유지에 훨씬 중요하다네. 선물이나 이벤트를 많이 하는 것보다 상처 주는 말을 하고 싶을 때 입을 다무는 편이 도움이 되지. 인간은 좋은 일은 쉬이 잊어버리지만 나쁜 일은 오래 기억하거든.”
자녀 양육도 마찬가지다. ‘완벽한 부모’보다 ‘괜찮은 부모’가 되는 편이 낫다. 가혹하거나 불공평한 ‘나쁜 양육’은 아이에게 상처를 주지만 유난히 성실한 부모가 아이를 더 행복하거나 건강하게 해주지 않는다.
바우마이스터와 과학 저널리스트 존 티어니는 이 책에서 부정적 사건이나 정서가 긍정적인 것보다 우리에게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경향성을 추적한다. 익히 알려진 대로 이는 진화의 결과물이다. 두려움 같은 부정적 신호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생존에 유리했기 때문에 인류의 뇌는 부정적인 것에 초점을 맞추도록 진화했다. 그래서 우리는 칭찬 세례를 받고도 비판 한마디에 잠을 못 이루며, 가족에게 한 번 저지른 실수를 만회하고자 몇 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부정적인 것은 전염력이 크다. 홈페이지에 달린 악플 하나가 사업체를 휘청이게 한다. 한번 악플이 달리면 좋은 경험을 했던 고객도 칭찬을 주저하게 된다. 부정적인 것을 좋아하는 뇌가 판단을 왜곡하기 때문이다. 저자들은 “가장 큰 보상은 가장 불만족한 소비자에게 집중하는 데서 온다. 소비자가 테러리스트가 되는 것을 방지하는 것은 투자 대비 네 배의 이익을 되돌려준다”고 말한다. 조직에서 ‘썩은 사과’를 골라내는 것이 중요한 것도 까닭이 같다. 동료에게 막말을 퍼붓는 ‘무법자’, 제 몫을 하지 않는 ‘무임 승차자’, 늘 침울하고 비관적인 ‘우울한 방관자’의 파괴력이 성실한 조직원의 긍정적 영향력보다 네 배가량 높다.
왜 네 배냐고? 학자들은 연구 끝에 “나쁜 경험 하나를 극복하려면 좋은 경험 네 번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도출했다. 사업에서 평균 이상의 성과를 내려면 온라인상에서 부정적 후기와 긍정적 후기의 비율이 1대4는 되어야 한다. 부하 직원을 한 번 야단쳤으면 네 번은 칭찬해야 한다. 말다툼 한 번에 성관계를 적어도 네 번 유지하는 커플은 꽤 건강하다. 저자들은 이를 ‘4의 법칙’이라 이름 붙였다.
‘뇌가 절망에 더 반응하도록 설계되어 있다는데 긍정적 사고가 무슨 소용이람?’
맥 빠지지만 희망은 있다. 저자들은 “행복해지는 연습을 하면 된다. 내 안의 ‘폴리애나’를 발견하라”고 조언한다. ‘폴리애나’는 1913년 미국서 출간한 동명 소설 주인공. 국내에는 1980년대 중반 ‘시골 소녀 폴리아나’라는 애니메이션으로 방영돼 알려진 이 고아 소녀는 불행 속에서도 기뻐할 이유를 찾는 ‘기쁨 놀이’를 주변에 전파한다. 이를테면 커튼도 벽 장식도 없는 낡은 다락방에 살게 되었을 때 ‘창밖 풍경을 보는 데 방해가 되지 않아 참 좋아!’라고 생각하는 식이다. 언젠가부터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라는 말이 일상적으로 쓰이고 있지만 실제로 PTSD는 외상을 입은 사람의 20%만 겪는다. 60% 넘는 외상 피해자가 영원히 아물지 않는 상처 대신 PTG, 즉 ‘외상 후 성장(Post-traumatic growth)’을 일궈낸다.
과학적이고 논리적이면서도 재미있게 읽히는 책. “나쁜 것은 더 강력하고 가끔은 극복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는 좋은 것이 승리할 것이라고 확신한다”는 결론이, 끝이 보이지 않는 팬데믹의 나날에 위로가 된다. 원제 ‘The Power of Bad’. 곽아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