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커버링
레슬리 제이미슨 지음|오숙은 옮김|문학과지성사|684쪽|2만2000원
예술적 재능이 있는 젊은 여성이 시대와 부모, 그리고 자신과 불화하다 술과 섭식장애 등으로 스스로를 망가뜨리고 나락으로 떨어지는 이야기는 흔한 서사다. 미국에는 심지어 ‘중독 회고록’이라는 장르도 있다. 알코올중독에 대한 에세이로는 캐럴라인 냅이 1996년 발표한 ‘드링킹, 그 치명적 유혹(Drinking: A Love Story)’이 고전의 반열에 올라있다.
레슬리 제이미슨(38)은 알코올중독과 회복 경험을 담은 이 책이 “그저 또 하나의 중독 회고록”에 그치지 않도록 분투해야만 했다. 술에 전 상태에서도 하버드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아이오와 작가 워크숍에서 예술학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단주(斷酒)하려 몸부림치는 와중에도 예일대에서 영문학 석·박사학위를 받은 성실함이 그가 그토록 싫어하는 ‘클리셰’에서 책을 구해내는 데 크게 기여했다. 저자는 박사학위 논문 주제이기도 한 중독에서 벗어난 20세기 미국 문인들 사례를 자기 이야기와 교차시켜 단단하게 직조했다.
잭 런던은 1913년 소설 ‘존 발리콘’에서 두 부류의 술꾼을 이야기한다. 하나는 시궁창에서 비틀거리며 ‘파란 생쥐와 핑크 코끼리’의 환각을 보지만, 또 하나는 ‘알코올의 백색광’ 덕에 황량한 진실을 본다. 둘째 유형은 술로 인해 감각이 더 예리해지며 재능이자 저주인 ‘시야’를 가지게 된다. 존 베리먼의 창작 연료는 ‘위스키와 잉크’로 여겨졌다. 평생 어머니의 사랑을 갈구했던 베리먼은 주장했다. “나에게는 고통의 권위가 있다, 예외적인 고통의 권위가.” 그는 에드거 앨런 포, 딜런 토머스 등 술에 취해 괴로워했던 과거의 천재 술꾼들과 자신을 동일시했다.
저자도 한때 술과 창작이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믿었다. “술에 취해 기능장애를 보이는 모습에서 매력을 발견하는-그 기능장애와 천재성의 관계를 페티시화하는-나의 능력은 제대로 고통받은 적 없는 자의 특권이었다.” 게다가 저자는 중상층 계급 백인 여자였다. 흑인의 음주가 저지받아야 할 위험한 것으로 여겨진 데 반해 백인 여성의 고통은 처벌보다는 동정받을 가치가 있다 여겨졌다. 그렇다고 해서 고통을 옷처럼 걸치고 다닌 건 아니었다. “오히려 나는 고통을 정신적 비료로, 미학적 목적을 지닌 어떤 것으로 이해하려 애썼다. 나는 폭음을 하는, 그렇지만 매일 아침 일어나 소설을 쓰는 외로운 작가라는 낭만적 자기인식을 계속 키워나갔다.”
많은 독자들이 술취한 영웅들이 술에서 깨길 바라지 않는다. 그러나 술꾼 천재에 대한 낭만적 신화는 찰스 잭슨의 소설 ‘잃어버린 주말’(1944)에서 완전히 깨어진다. “당신이 술꾼이었다는 것, 그것이 전부다. 당신은 마셨다, 끝.” 존 베리먼은 소설 ‘회복’을 쓰기 시작할 무렵 글을 쓰려면 술을 마셔야 한다는 생각이 망상임을 이해하게 된다. 아침에 눈을 떠 커피 대신 술을 마셨던 마르그리트 뒤라스는 취해서 글을 썼지만 음주와 창작과의 관계에 대해 어떤 망상도 품지 않았다. 그는 “취기는 아무것도 창조하지 않는다. 알코올은 지속되는 것은 어떤 것도 생산하지 못한다. 그것은 지나가는 바람일 뿐이다”라고 했다.
저자는 몇 번의 실패 후 술을 끊는 데 성공한다. “당신을 취하게 하는 것은 최초의 한 잔이다” 같은 AA(익명의 알코올 중독자 모임)의 모범 행동 강령은 지나치게 천편일률적이라 참아내기가 어려웠지만 한 의사로부터 “중독이란 레퍼토리의 축소”라는 말을 듣고 삶이 통째로 술을 중심으로 쪼그라들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취한 상태가 드러낸 건 ‘있는 그대로의 나’가 아니라 내가 될까봐 두려웠던 나였다. 나는 술에 취하면, 내가 요구뿐인 존재라고 믿었다.” 예민하게 벼린 감각으로 써내려간 문장이 매혹적인 책. 고통에 대한 묘사의 치밀함이 지나쳐 읽는 내내 심장이 칼에 베는 것처럼 괴로웠다. 유능한 경제학자였지만 늘 바람 피던 아버지를 자신의 똑똑함을 증명해 붙잡고 싶었던 어린 소녀의 불안이 연인을 갈망하면서도 버림받을까 두려워 밀쳐내는 미숙한 성인으로 이어지는 과정이 특히 섬세하게 그려진다.
모든 당분을 술로 섭취하고 있어 식사를 남길 정도로 술독에 빠져 있었지만 술 끊기에 성공한 후 “나에게는 두 개의 다른 삶이 있었다”고 고백한 레이먼드 카버는 음주의 세계에 이어 단주의 세계에서도 저자의 영웅이 된다. 화창한 11월의 어느 날, 저자는 차를 몰아 포트앤젤레스로 향한다. 카버의 무덤 옆 방명록에 단 한 줄을 적는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