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대역전
찰스 굿하트·마노즈 프라단 지음|백우진 옮김|생각의힘|376쪽|2만원
지난해 11월 마틴 울프 파이낸셜타임스(FT) 수석 경제평론가는 “2021년 물가가 5% 이상, 심지어는 10% 정도 오를 수 있다”고 칼럼에 썼다. 2% 수준의 물가 인상을 예상하는 주류 의견과는 색이 달라 화제였다. 당시 울프가 근거로 인용했던 수치와 논리가 담긴 책이 최근 국내 번역된 ‘인구 대역전(원제 The Great Demographic Reversal)’이다. 찰스 굿하트(85) 영국 런던정경대 명예교수와 경제학자 마노즈 프라단은 인구구조 변화에 따라 인플레이션이 찾아올 것이라 예측한다. 이들은 “(코로나로 인한) 봉쇄가 해제되고 회복이 시작되면 10%대 물가 상승(인플레이션)이 밀어닥칠 것”이라고 썼다.
이들의 논의는 한 줄로 요약하면 ‘바보야, 문제는 인구구조야’다. ‘지난 40여 년간 세계 물가가 안정세를 보여온 게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덕분’이라는 경제학계의 다수론을 반박하는 주장이다. 저자들은 세계 경제가 안정적으로 성장했던 주요 요인을 20세기 노동 인구 증가에서 찾는다. “전 세계 경제 인구는 1991년부터 2018년까지 27년간 2배 이상 증가했다.” 2차 세계대전 후 베이비붐 세대와 여성들의 노동시장 참여가 활발해졌고, 중국과 동유럽이 세계 경제에 통합되면서 노동 인구는 전례 없이 늘어났다. 게다가 중국의 인구구조는 젊은 노동 인구를 계속 공급했다. 책에 따르면 1990년부터 2017년 사이 중국의 생산가능인구는 2억4000만명 늘었다.
저자들은 이를 “중국의 부상과 인구변동이 만든 ‘스위트 스폿’(경제변수의 최적 조합)”이라고 표현한다. 흔히 돈을 풀면 물가가 오른다고 하지만, 급증한 노동인구는 이런 인플레이션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요인이 됐다고 저자들은 말한다. 2008년 세계 금융 위기에 따른 양적완화 이후에도 인플레이션이 나타나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다. 세계 각국은 지난 수십 년 동안 노동력의 축복 속에 낮은 물가와 낮은 이자율을 유지하면서 경제 발전을 이룰 수 있었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기존 학자들이 특정 국가와 2~3년 정도의 짧은 시기에만 거시경제 분석 초점을 맞추기에 ‘큰 그림’을 보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이 스위트 스폿이 사라지고 있다. 유럽, 일본, 한국에 이어 중국도 고령화가 시작됐다. 고령화로 인플레이션은 다시 돌아온다고 저자들은 지적한다. 노동 인구가 줄면 수요 공급 원칙에 따라 임금은 인상된다. 고령화로 이들이 부양해야 할 인구도 급증하면서 정부는 세금을 올려야 한다. 세금이 오르면 자연스럽게 노동 인구는 더 높은 임금을 요구하게 된다. 인플레이션 압박이 본격화하는 것이다. 인플레이션으로 정부가 금리를 올리면 그간 낮은 금리로 큰 부담이 아니었던 민간·정부 부채 문제도 도미노처럼 터질 수 있다. 저자들은 “저성장 시기에 금리 상승이 이뤄질 경우 채무자는 지탱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30년 이내에 전 세계에 대규모 장기 인플레이션이 도래할 것이라 경고한다.
옆 나라 일본은 고령화가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각종 경기부양책에도 ‘잃어버린 10년’ 이후 장기간 경기 침체에 빠졌다. 책의 주장을 반박하는 사례다. 그러나 저자는 세계화라는 변수를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일본 기업들은 2000년대 들어서 값싼 해외 노동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인플레이션을 피해갔다고 주장한다. 전 세계가 고령화하는 상황에서 다른 국가들은 일본의 선례를 따르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한다.
흥미로운 대목도 많다. ‘노동 인구가 줄어들면서 노동자의 협상력이 강화돼 임금이 오르면서 불평등은 완화될 것’ ‘고령화사회에서도 부동산 가치는 떨어지지 않을 것’ ‘치매 등으로 고령층을 따라다니는 일자리가 늘어나며 이는 AI가 대체하지 못할 것’ ‘노동계층이 우파 포퓰리스트에게 투표하는 이유는 외국인 노동자 유입을 줄여 협상력을 강화하기 위한 것’ 같은 내용이다.
인구구조 변동과 각종 경제 통계로 중무장한 책은 논리적이지만, 주류 의견과는 거리가 있다. 그러나 무시해서는 곤란한 지적이라는 목소리도 높다. 마틴 울프는 저자들을 ‘양치기 소년’에 비유했다. “양치기 소년이 마지막에 ‘늑대’라고 외쳤을 때 늑대는 정말 왔다. 저자들은 ‘낮은 인플레이션과 높은 부채의 시대는 갔다’고 외치고 있다. 현재 저금리·저인플레 기조가 미래에도 계속되리라 생각하는 것은 위험하다.”
그냥 양치기 소년도 아니다. 저자는 자신의 이름을 딴 ‘굿하트의 법칙’(통화량 등 특정 경제지표를 정책 목표로 삼는 순간 지표가 본래의 움직임을 상실한다)을 내놓은 거시경제 분야 석학이다. 세계 출산율 꼴찌인 이 나라는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