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법무병원 정신과 전문의 차승민 지음

나의 무섭고 애처로운 환자들

차승민 지음|아몬드|312쪽|1만7000원

교도소와 치료감호소는 신체의 자유를 구속하는 곳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역시 치료감호소는 정신질환 치료를 통한 재발 방지라는 또 하나의 과제를 맡고 있는 곳. 15일 국내 최대 치료감호소이자 정신병원인 충남 공주 국립법무병원에서 4년째 일하는 차승민(40) 정신과 전문의를 만났다. 현직 치료감호소 정신과 전문의가 국립법무병원의 현실을 털어놓는 첫 대중서를 쓴 것이다. 범죄자이자 정신질환자인 이들을 치료하는 이야기를 하면서 그는 “그들이 사는 세계는 가짜지만 그들이 겪는 고통은 진짜”라고 했다.

◇”한 달간 정신감정, 꾀병 안 통해”

국립법무병원에서는 한 해 450명 정도의 정신감정이 이뤄진다. 범죄와 정신질환 간의 관계가 있을 수 있다고 본 법원·검찰·경찰이 의뢰하는 것으로, 국내 범죄 관련 정신감정의 90% 수준이다. 조현병·조울증·약물중독 등 의심 병명은 여럿이다. 이들은 한 달씩 머무르며 전문의에게 범죄를 저지를 당시 ‘맨정신이었는지’를 진단받는다. 범죄와 정신질환이 직접적 연관이 있는지를 살펴야 하기 때문이다.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 피의자 김성민, 2018년 강서구 PC방 살인사건 피의자 김성수, 2019년 진주 아파트 방화사건 피의자 안인득이 이곳에서 정신감정을 받았다. 차씨는 김성수 정신감정을 했었는데, 그는 우울증 치료를 받았지만 범행 당시에는 제정신이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배트맨이 암약하는 고담시에서 악당 마피아 대부(代父)가 정신병에 걸렸다며 형량을 줄여 아캄 정신병원에 수용되는 장면을 떠올릴 법하지만 현실은 영화와는 다르다. 정신질환은 연기하기 어렵다. “조현병 환자로 보이려고 환청이 들린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어요. ‘환청이 왼쪽·오른쪽 어디에서 들려오냐’고 물어봐요. 진짜 환청이 들리면 ‘그게 무슨 소리냐’고 합니다. 연기하는 사람들은 고심 끝에 ‘왼쪽’ ‘오른쪽’이라고 대답하죠.” 물론 전공의(레지던트) 1년 차 때부터 조현병 환자 등은 숱하게 봐왔기에 꾀병은 통하지 않는다고 그는 덧붙였다.

정신과 전문의 차승민은 국립법무병원에서 4년째 정신 질환으로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을 치료하고 있다. 그는“늘 무서운 사람으로만 여겨지는 환자들과 함께하기 위해 오늘도 병원으로 출근한다”고 했다. /아몬드

◇”치료받지 못한 정신질환이 범죄로”

그는 이기기 위한 것이 아닌, 지지 않기 위한 싸움을 하고 있다. 환자들은 국립법무병원에서 형기를 마치고 퇴원하거나, 치료 기간이 다 지나가면 교도소로 돌아간다. 이들이 받는 진단서에는 대부분 ‘사후 부정 장기간 정신과적 전문 치료가 필요하다’는 소견이 붙는다. ‘완치’가 거의 없는 정신질환의 특징 때문이다. 강력범죄를 일으킬 때마다 눈총을 받는 조현병 환자들은 치료받아도 대부분 병식(病識·병에 걸렸다는 자각)마저 없다. 아픈 줄 모르니 더 악화하지 않도록 약을 먹어야 한다는 의식도 생기지 않는다.

허무함을 느끼며 지쳐 나가떨어질 법도 하지만 그는 이렇게 말했다. “기대가 크면 이 일을 할 수 없어요. ‘퇴소하고 보호관찰 기간 3년 동안 약을 잘 먹으면 좋겠다’ 정도를 목표로 하죠. 약 먹는 습관이 생겨서 다시 범죄를 저지르지 않을 수 있다고 기대하면서요.”

세금을 들여서 완치도 불가능한 정신질환자를 왜 치료해줘야 하는가. 더 안전한 사회를 위한 비용이라고 그는 말했다. “치료받지 못한 정신질환 증상의 끝에 범죄가 있었다.” 여성혐오 범죄로 조명받았지만 실상은 피의자가 조현병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해 발생한 강남역 살인 사건이 대표적이다. 차씨는 “사건의 핵심에 제대로 포커스를 맞춰야 비극이 반복되는 것을 예방할 수 있다”고 했다.

차씨는 “자신이 무슨 병을 앓고 있는지, 그 병으로 인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를 인식하고 난 다음에야 참회도 가능하다”고 했다. 책은 강력범죄라는 낙인으로 ‘인간'으로 여겨지지 않던 사람들의 면모를 드러낸다. 그리고 지금의 치료감호 시스템이 제대로 기능하기 어려운 제도적 한계를 전달한다. 현재 국립법무병원에 입소한 범죄자는 1000명이 넘는다. 풀타임으로 일하는 정신과 전문의는 원장을 포함해 5명. 차씨가 담당하는 환자는 148명이다. 정신과 의사 1명당 적정 입원 환자 수는 60명이다.

그는 책에 “이곳 의료진은 무너지는 댐을 막기 위해 서로 손을 맞잡고 있다. 깍지를 낀 그 손을 내가 놓아버리면 다른 이가 그 부담을 떠안아야 한다”고 썼다. 박봉을 감수하며 범죄자를 치료하는 국립법무병원은 정신과 의료계에서 ‘3D’ 업종 취급을 받는다. 정신과 의사들도 “무섭지 않으냐”고 질문해올 정도로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곳이다. 책을 써서 일반 대중의 치료감호소와 치료감호소 수용자에 대한 편견을 깨는 책이기도 하지만, 의료계의 그런 인식을 바꾸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고 한다. 차씨는 “동료 정신과 의사들도 치료감호소가 아주 이상한 곳은 아니라는 것, 제대로 환자를 치료하고 있는 곳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으면 좋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