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생물 콘서트

프라우케 바구쉐 지음|배진아 옮김|흐름출판|396쪽|2만원

그러니까 이 콘서트는 바닷물 한 모금으로부터 시작한다. 코로나 사태가 끝나고, 바다로 휴가를 떠나 신나게 수영을 즐기다가 바닷물을 들이켰다고 상상해보자. 이때 당신이 삼킨 건 그냥 소금물이 아니다. 그 안에는 해초, 물고기 유생, 바다고둥, 갑각류, 화살벌레 등이 함께 들어있다. 보통 플랑크톤이라 부르는 아주 작은 생명체들 말이다. 고작 바닷물 한 모금에 그 많은 생물이 있었다고 겁부터 먹지 말자. 비타민, 항산화 물질 및 각종 필수 영양소를 함유한 스피룰리나 같은 건강 보조제들의 원료가 바로 플랑크톤이다. 플랑크톤은 면역 체계를 강화하고 염증을 완화해주거나 신체 생리 작용을 활발하게 해주는 성분을 풍부하게 함유하고 있다. 그 작은 몸으로 혹독한 환경에 맞서 스스로를 지키려고 진화하며 생긴 부산물이다. 해양생물학자이자 환경운동가인 이 책의 저자는 바닷물을 마신다는 건 “영양가 풍부한 간식, 즉 수퍼푸드를 공짜로 즐기는 것”이라고 말한다.

저자에 따르면 지구 상의 생명이 상상할 수 없는 방식으로 서로 의존하고 있단 걸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가 플랑크톤이다. 인간을 포함, 지구 상 대부분의 생명이 플랑크톤에 의존한다. 지구 전체 산소의 절반 이상을 플랑크톤이 생산하기 때문이다. 쥘 베른의 ‘해저 2만리’에서 노틸러스호와 사투를 벌였던 괴물로 등장한 대왕오징어 역시 플랑크톤이 없으면 살아가기 어렵다. 대왕오징어는 천적 향유고래가 물속을 휘젓고 다닐 때 주변에서 반짝이는 플랑크톤의 움직임을 포착해서 미리 줄행랑을 친다.

전 세계 바닷물고기의 4분의 1 정도에 생활 공간을 제공하는 산호 역시 비슷한 존재다. 우리에게 친숙한 산호는 주로 따뜻한 열대 바닷속에서 온갖 색깔로 빛나며 스킨스쿠버들의 눈을 즐겁게 해주는 생물이다. 하지만 빛이 닿지 않는 심해 속에서 살아가는 한대성 산호는 불가사리나 갑각류, 각종 해면동물에 영양분과 피난처를 제공해주는 바다의 오아시스 역할을 한다. 또한 산호는 바다의 병원 역할도 한다. 산호 군락의 머리 부분에 자리 잡고 사는 청소부 새우나 청소부 물고기들 덕분이다. 이런 청소부들은 산호 근처로 다가오는 쥐가오리 등 다른 바다생물의 이빨 사이에 낀 찌꺼기나 외피에 달라붙은 기생충, 아니면 각종 분비물들을 먹이로 삼는다. 이런 청소부들이 없다면 많은 바다 생물들이 몸을 뚫고 나오는 기생충이나 찌꺼기로 썩어버린 이빨 때문에 고통받게 된다.

바닷속 생물들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방식으로 서로 의존하면서 살아간다. 우리에겐 애니메이션‘니모를 찾아서’의 주인공 니모로 잘 알려진 흰동가리류 물고기들이 평소 집처럼 서식하는 산호초 사이를 유영하고 있다. /프라우케 바구쉐

물론 바다 세계가 이런 공생과 공존만 가득한 곳은 아니다. 육지 세계 못지않은 어둠도 존재한다. 여기서 반전은 대형 수족관의 인기 스타 해달이다. 느긋하게 물을 등지고 누워 둥둥 떠다니면서 배 위에 솜털 가득한 새끼를 사랑스럽게 쓰다듬는 그 해달 말이다. 이 해달은 사랑을 나눌 때 아주 거칠다. 교미 중에 암컷이 코피를 터뜨리거나 심지어 죽는 경우도 있다. 교미할 암컷을 찾지 못한 해달이 암컷의 새끼를 납치해 협박하거나 다른 종(種)을 성폭행하는 사례도 있다고 한다. 아무리 귀여운 외관을 갖고 있어도 해달 수컷은 “명백하게 지구 상에서 가장 역겨운 동물”이라고 저자는 단언한다.

인간 역시 바다에 어둠을 드리운다. 남획으로 바다를 텅 비게 만들고, 온갖 오염 물질로 생태계를 교란하는 주범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지구온난화다. 온난화로 지구 해수면이 올라와 몰디브섬이 잠긴다는 수준의 문제가 아니다. 온난화로 바다 온도가 올라가면서 바다 생물들의 보금자리인 산호초가 죽어버린다. 산호가 사멸하면 우리가 알던 푸른 바다는 ‘갈색 사막’으로 변하게 될 거라고 저자는 경고한다. 해조류들이 산호에 살던 생물들에게 뜯어 먹힐 걱정 없이 창궐하면서 권력을 장악하게 되기 때문이다. 책에서 내내 강조하는 것처럼 바다 생물들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생명의 콘서트를 벌인다. 약간의 실수만으로도 콘서트 전체가 망할 수 있는 것처럼, 1~2도의 수온 변화만으로도 바다 전체가 망가질 수 있다.

식상한 종말론처럼 들리지만, 해양오염 문제의 심각성을 알리기 위해 9500km에 걸친 항해를 감행했던 저자의 이력이 경고에 무게를 싣는다. 활기찬 장조로 시작해 음울한 단조로 끝나는 콘서트라는 게 아쉽다. 바다생물의 복잡한 학명(學名)을 충실히 기재한 탓에 마치 러시아 소설을 읽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도 단점이라면 단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