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렵지만 매력적인/동아시아

우리는 다른 사람 몸에 들어갔다 올 수 없다. 다른 사람이 어떤 것을 보았고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알 수 없기에 그 사람이 보이는 말과 행동으로 그 사람을 판단한다. 하지만 보이는 것은 불완전하다. 타인을 판단하는 건 그래서 늘 어렵다. 경험의 한계가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 한계다.

난민 수만 명이 지내는 사막 한가운데의 임시 도시를 한번 상상해보라. 중동 지역을 여행해 보았거나 이런 장면을 뉴스 등에서 본 적이 있더라도 이를 제대로 상상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그런데 크리스 밀크라는 영화감독은 내전으로 삶의 터전을 잃은 시리아인 8만명이 모여 지내는 한 난민 캠프를 실제로 방문해 이곳을 가상 현실 다큐멘터리 영화로 찍었다. 이 영화는 2015년에 뉴욕 트라이베카 영화제에서 상영되었는데, VR 헤드셋을 쓰고 영화를 보는 관객은 빵을 먹고자 줄 서 있는 아이들과 죽음을 피해 사막을 건너 도망쳐 온 가족들의 표정을 바로 옆에서 보듯 생생하게 볼 수 있다. 어떤 편집도 영상 효과도 없이 그냥 몇 분 동안 그들과 함께 난민 캠프에 있는 경험을 하는 것이다. 가상이라도 이 경험은 강렬했고, 헤드셋을 벗은 관객들은 사방에서 눈물을 훔쳤다.

장동선 뇌과학자·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 박사

이 이야기는 제러미 베일렌슨 스탠퍼드 대학교 가상인간상호작용연구소 소장이 쓴 ‘두렵지만 매력적인’(동아시아)이라는 책에 나온다. 베일렌슨 교수는 인간이 타인과 공감할 수 있는 원초적 한계를 경험의 폭을 넓혀 극복하고 싶어 한다. 제자와 함께 진행한 실험에서는 가상 현실 속에서 색맹을 경험한 사람들이 현실로 돌아와 타고난 색맹인 사람들에 대한 공감이 향상된 예를 보여주기도 했다. 잠깐의 경험이 세계관을 바꿀 수도 있다고 그는 이야기한다.

내년을 기점으로 애플, 페이스북, 마이크로소프트가 제각각 완전히 새로운 가상·증강 현실 기기 출시를 준비하고 있다. PC와 스마트폰을 넘어서는 새로운 메타버스 플랫폼의 세상이 열릴 거라고 기대가 크다. 이러한 새로운 경험의 세상이 온다면, 그 경험들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이해와 공감의 한계를 극복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기를 바란다. 두렵기보다는 매력적이기를. 뇌과학자·궁금한뇌연구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