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실내형 인간./마티

우리는 실내형 인간

에밀리 앤시스 지음|김승진 옮김|마티|424쪽|1만8000원

코로나 사태로 실내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길어지며 갑갑함을 호소하는 이들도 있지만, 예일대에서 과학사와 의학사를 공부한 과학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현대 인간은 본질적으로 ‘실내종’”이라고 말한다. 2011년 연구에 따르면 북미와 유럽 사람은 90%의 시간을 실내에서 보낸다. UN은 2017년 한 보고서에서 앞으로 40년 사이에 전 세계적으로 실내 공간 면적이 두 배가 될 것이라고 추산했다. 저자는 “오랫동안 우리는 너무나 익숙한 나머지 실내 환경이 가진 힘과 복잡성을 간과했다”면서 “세심하고 사려 깊은 건축과 디자인으로 실내 환경이 인간의 건강과 행복과 후생에 좋은 영향을 주도록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우선 사무실 환경부터. 2016년 미국 웰 리빙 연구소는 18주에 걸친 실험으로 사무실 환경과 노동자의 업무 성과 간의 관계를 연구했다. 배경 소음, 조명, 사무실 공기, 온도 등 여러 환경 요소 중에서 노동자들이 가장 민감하게 변화를 느끼는 건 온도였다. 특히 일하는 공간이 너무 추우면 노동자들이 불평하고 불쾌함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험 참가자들은 어둡고 추운 사무실이 겨울같이 느껴진다고 했고, 환경을 바꿀 방법이 없어 무기력하게 느껴졌다고 했다.

그렇지만 ‘모든 이에게 좋은 환경’이란 없다. 내가 쾌적하다고 느끼는 온도를 옆자리 동료는 남극처럼 춥다고 느낄 수도 있다. 2019년 연구에 따르면 여성들은 따뜻한 기온에서 인지 점수가 높았고 남성들은 시원한 공간에서 인지 점수가 높았다. 요즘 유행하는 개방형 사무실도 내성적인 사람에게는 끔찍할 수 있다. 프라이버시가 보장되지 않고, 집중을 방해하는 요소가 많으며, 소음이 심하기 때문이다. 개방형 구조는 전염병에도 취약하다. 2011년 덴마크 연구에 따르면 개방형 사무실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개인별로 구획된 사무실에서 일하는 노동자보다 병가를 62% 많이 냈다. 직원 간 대면 상호작용이 더 많은 회사가 일반적으로 업무 성과가 더 높은데 포춘 선정 500대 기업 중 한 곳이 칸막이 사무실을 개방형 구조로 바꿨더니 회사의 의도와는 달리 직원들이 대면으로 대화하는 양이 72% 줄고 디지털 소통이 늘었다. 저자는 “쉽게 조정 가능하고 비용이 덜 드는 등 고용주가 개방형 사무실을 좋아할 이유는 많지만 프라이버시가 없는 환경에서 노동자들은 사회적으로 움츠러든다”고 말한다.

나선형 계단 위에서 움직이고 있는 사람들. 저자는 ‘건강한 디자인’의 요건으로 계단이 잘 보이는 곳에 있고, 넓고 아름다우며 편리할 것을 강조한다. /게티이미지코리아

코로나 이후 감염을 피하고 운동량을 높이려 계단을 이용하는 사람이 늘고 있지만, 엘리베이터의 유혹을 이기고 계단을 택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 저자는 “결국 디자인의 문제”라고 말한다. 엘리베이터는 늘 밝고 반짝이는 로비에서 사람들을 끌지만, 계단은 좁고 칙칙하며 육중한 방화문 뒤에 숨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2010년 뉴욕 보건 및 정신 위생국은 뉴욕 시민들의 비만과 당뇨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활동 친화적 디자인 가이드라인’을 출간했다. 신체 움직임을 촉진하는 방향으로 건물을 디자인하도록 권고하는 이 가이드라인은 특히 계단의 힘을 활용하도록 촉구한다. 계단이 잘 보이고, 편리하고 넓고 아름다우며 건축적으로 분명히 구분되어 있으면 사람들이 엘리베이터를 덜 탄다는 걸 보여주는 연구 결과들을 강조해 소개한다. 계단 사용을 독려하는 표지판을 두고 근처에 미술품을 놓거나 음악이 나오게 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2007년 스위스의 제네바 대학 병원은 석 달간 계단 이용하기 캠페인을 벌이며 병원의 열두 층 모두에 계단 사용 독려 포스터를 걸고 스티커를 붙였다. 12주가 지나자 직원들은 체중과 체지방, 허리둘레가 줄었고 혈압과 콜레스테롤이 낮아졌으며 심혈관계 건강도 향상됐다.

가정, 학교, 병원, 노인 요양 시설 등의 실내 공간을 건강하게 바꿀 수 있는 디자인을 과학적으로 모색하는 책. ‘백의의 천사’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이 “병원에 채광을 극대화하고 자연 통풍을 우선순위에 놓아야 한다”고 촉구한 건강한 병원 디자인의 선구자이기도 했다는 등의 흥미로운 사례들을 들려준다. 중요한 이야기를 쉬운 말로 설득력 있게 풀이하고 있지만, 건축과 디자인 이야기를 하면서 사진이 한 장도 없다는 점은 아쉽다. 원제 The Great Indoo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