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테러 이후 미군의 공세로 패퇴했던 탈레반이 20년 만에 아프가니스탄을 다시 장악했다. ‘역사는 반복되는가’라는 질문은 이제 수사가 아니라 현실이다. 유라시아 대륙 한복판에 자리 잡은 이 땅에서 무엇이 반복될지, 아프가니스탄을 보다 깊이 이해하게 해주는 책들을 전문가들에게 자문해 선별했다. 19세기 영·러 갈등으로 시작된 혼란상을 정치·여성·문명에 걸쳐 살펴본다.
[정치]
영·러가 시작한 ‘그레이트 게임’, 탈레반을 만들었다
대영제국, 제정 러시아, 소련에 이어 미국마저 손을 떼면서 아프가니스탄은 다시 한번 ‘제국의 무덤’이 됐다. 미군이 20년 동안 주둔했지만 대탈레반 공세는 비효율적이었다. 박현도 서강대 교수는 “수세에 몰린 탈레반이 파키스탄으로 도주하면 미군은 더 이상 공격할 수 없었다”고 했다.
탈레반은 어떻게 파키스탄을 넘나들며 전력을 회복했을까. 이를 이해하려면 영·러가 작게는 중앙아시아, 크게는 세계 패권을 두고 경쟁한 19세기로 돌아가야 한다. 영국 저널리스트 피터 홉커크가 쓴 ‘그레이트 게임’은 전문가들이 입 모아 추천하는 이 시기를 다룬 고전. 부동항을 찾아 남하하는 러시아, 영국령 인도의 안보를 위해 지정학적 요충지인 아프가니스탄 확보에 나선 영국이 19세기 지금의 아프가니스탄에서 ‘그레이트 게임’을 벌인다는 것이다.
100년에 걸친 쟁탈전 결과 영국은 아프가니스탄을 속국으로 삼고, 현 파키스탄 지역을 아프가니스탄에서 떼어 내 자국령으로 확보한다. 1893년 설정된 이 국경 양쪽으로 탈레반 핵심인 ‘파슈툰족’의 거주지가 있었다. 험준한 산악 지형이라 국경은 유명무실했고, 단일민족이라는 공통점을 가진 탈레반은 양국 국경을 넘나들며 힘을 기를 수 있었다.
저자는 서문에서 “(소련의 패망으로) 이제 이곳에서는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있으며, 오직 용감하거나 어리석은 사람만이 미래를 예측하려 할 것”이라고 했다. 1996년 탈레반이 공개 처형한 아프가니스탄 대통령 나지불라가 “과거의 끔찍한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모든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이 이 책을 읽어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러나 ‘그레이트 게임’은 19세기 영·러 분쟁에 초점을 맞춘 만큼 탈레반 자체에 대한 설명은 부족하다. 외교부 아중동국장을 지낸 권희석 주이탈리아 대사의 ‘아프가니스탄, 왜?’는 이런 아쉬운 점을 달래주는 책이다. 1994년 탈레반의 태동부터 1996년 정권 장악, 2001년의 패퇴 이후 정세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한다. 그는 “탈레반의 많은 요원은 파키스탄의 아프간 난민 수용소에서 태어나 파키스탄 국적을 얻었다”며 “1990년대 탈레반이 아프간 전체를 장악하면서 양국 간 국경은 사실상 폐지됐다”고 지적한다.
[여성]
“여자 혼자 다니면 곤장, 매니큐어 바르면 손가락 잘라”
“여자들은 항상 집에 있어야 합니다. 밖에 나갈 때는 남자 친척을 대동해야 합니다. (여자가) 혼자 다니면 곤장을 맞습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얼굴을 보여선 안 됩니다. 심하게 맞게 될 것입니다. 화장품 장신구는 금지. 공공장소에서 웃어서는 안 됩니다. 손톱을 치장하면 손가락 하나를 자를 것입니다. 여학교는 즉시 폐쇄합니다.”
미국에서 활동하는 아프가니스탄 출신 작가 할레드 호세이니는 소설 ‘천 개의 찬란한 태양’에서 1996년 카불을 점령한 탈레반의 여성 인권 박탈 현장을 이렇게 묘사한다.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는 “이 소설은 픽션이지만 논픽션보다 더 사실적”이라고 했다.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을 장악한 탈레반이 ‘여성 인권을 존중하겠다’고 했지만 부르카(눈까지 가리는 의상)를 입지 않았다고 여성을 사살하는 지금, 아프가니스탄은 1996년으로 다시 돌아갔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소설은 일부다처제 아래에서 한 남편을 두고 있는 아내들, 마리암과 라일라를 통해 이야기를 전개한다. 한때 개방적이었던 카불은 ‘해방군’이라며 들어온 탈레반에 의해 이슬람 근본주의 율법에 복종해야 하는 곳으로 변한다. 탈레반 치하에서 라일라는 마취제도 진통제도 항생제도 없이 제왕절개로 아이를 낳는다. 우선순위가 떨어지는 여자를 위한 약은 없었다. “탈레반의 눈에는 소련의 앞잡이라는 것은 여자라는 것보다 약간만 더 경멸스러운 존재였을 뿐이다.”
소설은 9·11테러 이후 미군의 공격으로 탈레반이 카불에서 물러나면서 주인공이 할리우드 영화 ‘타이타닉’을 보는 장면으로 끝난다. 제목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은 카불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17세기 페르시아 시에서 따온 것이다. 이 시를 쓴 시인은 “알라여, 그러한 아름다움을 인간의 사악한 눈으로부터 보호해주소서”라고 했다. 역사의 아이러니다.
근본주의 이슬람의 여성에 대한 인권 탄압을 알려주는 책으로는 ‘나는 왜 이슬람 개혁을 말하는가’가 있다. 소말리아에서 태어났고 무슬림형제단에 소속됐던 여성이 근본주의 이슬람을 비판하는 책이다. 이슬람의 성문법인 샤리아에 대해 “성의 불평등이 샤리아의 핵심”이라며 “여성 및 소수자를 7세기에나 있을 법한 뒤떨어진 방식으로 대우하게 해서는 안 된다”고 비판한다.
[문명]
왕오천축국전의 ‘바미안 大佛’도 이곳… 간다라 미술 발상지
2001년 탈레반은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에서도 언급됐던 바미안 대불을 박격포 등을 활용해 파괴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이기도 한 이 석불을 파괴하면서 탈레반은 세상에 악명을 떨쳤다.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 접경지대에서 발원한 간다라 미술의 역작은 가루가 됐다.
이렇듯 아프가니스탄은 유라시아 대륙의 중심이자 동서 문화의 접점이었다. ‘아프가니스탄, 잃어버린 문명’은 이주형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가 현지 답사를 통해 쓴 아프가니스탄 문명사다. 아프가니스탄은 동서로 인류를 연결해온 문명의 로터리였다. 로마와 그리스, 그리고 중동의 문물들은 동방으로 가려면 중앙아시아와 인도 평원, 파미르 고원이 만나는 이 땅을 거쳐야 했다. 아프가니스탄을 19세기 영·러의 지정학적 ‘완충지대’나 20세기 소련과 미국의 대리전이 벌어졌던 땅 정도로 생각했다면 그 풍부한 문명의 깊이에 놀라게 된다. 페르시아인·그리스인·인도인·터키인·몽골인 등 이 땅을 거쳐 간 지배층이 흔적을 남겨둔 것이다. 알렉산더 대왕이 남기고 간 그리스 문명이 간다라 미술로 이어진 것이 대표적이다. 지금 아프가니스탄이라는 땅에서 벌어지고 있는 비극은 단지 인류 문명 그 자체에 대한 공격이기도 한 것이다.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우리와 연결된 문화재도 나온다. 황금 유물 2만점이 쏟아져 나온 ‘틸라 테페’ 유적에서는 우리 삼국시대 고분에서 출토된 것과 유사한 양식의 금관이 1978년 발굴됐다. 카불 국립박물관이 소장하고 있지만, 문화재 파괴를 일삼아온 탈레반의 카불 점령으로 안위를 걱정해야 할 상황이 됐다.
저자는 “사라져 버린 것, 더 이상 볼 수 없는 것을 위해 무엇인가 해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을 느꼈다”며 “야만적인 우상파괴의 땅으로 기억되는 곳에서 한때 번성했던 문명에 대한 기억을 일깨우고 그것이 비극적으로 사라지기까지의 경위를 알리는 일이었다”고 했다.
다만 16억 이슬람 신도 중 가장 극단적인 분파로 꼽히는 탈레반이 이슬람 전체를 대변한다고 볼 수는 없다. 미국의 이슬람 연구 권위자가 쓴 ‘이슬람의 모든 것’은 122개의 문답 형식으로 이슬람을 처음 접하는 사람 입장에서 보다 균형 잡힌 이해를 돕는다. 당연한 말이지만, 모든 무슬림이 탈레반은 아니다.
※책 추천해주신 분: 박현도 서강대 유로메나연구소 교수, 엄익란 단국대 자유교양대 교수,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 장지향 아산정책연구원 중동연구프로그램 선임연구위원, 정재원 국민대 유라시아학과 부교수.(가나다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