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 임권택 감독의 1980년대 영화 '복부인' 포스터.
/창비 여성학자 최시현 연세대 국학연구원 학술교수가 쓴 '부동산은 어떻게 여성의 일이 되었나'.

부동산은 어떻게 여성의 일이 되었나

최시현 지음|창비|308쪽|2만원

김의겸 열린민주당 의원은 2019년 부동산 투기 의혹으로 청와대 대변인직을 사퇴하면서, “아내가 저와 상의하지 않고 내린 결정이었다”고 했다. 지난해 김조원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잠실 아파트를 시세보다 비싼 값에 내놓아 논란이 일자, 청와대 관계자는 “통상 부동산 거래를 할 때 얼마에 팔아달라고 하는 것을 남자들은 잘 모르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이 사례들이 보여주듯 “부동산 문제는 ‘집안 일’이므로 아내 소관이고, ‘바깥일’ 하는 남편은 잘 모른다”는 공식은 부부 모두 ‘영끌’해 패닉바잉하는 밀레니얼 세대에선 어느 정도 붕괴되긴 했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 통념으로 작용한다.

여성학자 최시현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학술연구교수가 쓴 이 책은 이러한 통념이 자리 잡게 된 연원을 좇는다. “주택 문제에서 드러나는 한국 사회의 단면은 중산층의 시민윤리가 근본적으로 성별 분업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점이다. 남성은 이 문제를 침묵하고 외면함으로써 공적 사회에서 시민성을 보장받아왔고, 여성은 그 이면에서 자기 손을 더럽히는 것을 감수하며 도시 중산층 가족의 물적 토대를 쌓아올렸다.” 저자는 다양한 주택 매매 경험이 있는 1950~1980년생 여성 25명 심층 인터뷰를 토대로 ‘좋은 엄마’ ‘버젓한 중산층’이라는 가족주의 도덕을 수용한 여성들의 부동산 투자가 ‘자가 소유’를 상징으로 하는 한국 현대도시 중산층의 뼈대를 만들어냈다고 주장한다.

임권택 감독의 영화‘복부인’의 한 장면. 최시현 교수는“‘복부인’은 현모양처의 반대항처럼 구성돼 이기심으로 똘똘 뭉친, 국가 경제에 악영향을 끼치는 인물로 변질됐다”고 분석한다. /네이버

“사람들은 집에서 꿈을 키웁니다. 남편의 성공, 가족의 건강과 화목, 그리고 아이들의 미래. 그 모든 것이 잘되기를 바라는 당신!”이라는 2002년 ‘아이파크’ 신문 광고는 ‘좋은 집’을 마련해 가족의 행복을 일구는 일이 ‘집사람’이라 불리는 여성의 몫임을 암시한다. 2008년 ‘래미안’ TV 광고에서 아들 부부의 집들이에 온 시어머니는 “애썼다, 에미야”라며 며느리의 노고를 치하한다. 저자는 197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기업가, 고위 관료, 토지 브로커 등 특수한 계층이 주도했던 부동산 투기가 강남 개발이 본격화된 1970년대 중반부터 중산층에게까지 전파되며 ‘대중화’되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가계부 꼬박꼬박 쓰고 근검절약하며 ‘현모양처’로 불리던 알뜰 주부들이 부동산 중개소나 아파트 분양권 추첨 현장 등 소위 대중화된 투기 현장에 뛰어들며 ‘비정상적 억척’으로 사회 경제를 교란하는 ‘복부인’이라 질타받게 되었다는 것이다.

아파트 청약에 당첨돼 큰돈을 번 후 향락에 취하다 거액의 토지 사기를 당해 쇠고랑을 차게 된 주부의 이야기를 그린 임권택 감독 영화 ‘복부인’(1980)은 ‘돈맛’을 본 현모양처의 타락을 그린 전형적인 서사다. 저자가 인터뷰한 여성들 중 몇몇은 부동산 투기를 통해 큰 이득을 보면서 여성의 노동소득은 ‘반찬값이나 버는 일’ 정도로 여겨지던 사회에서 자신의 생산성을 증명하고, 부부 관계에서 권력의 변화까지 경험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들의 딸조차도 엄마의 능력을 인정하는 한편 “여자로서는 불행했다”며 부정적인 평가를 내린다. 저자는 “복부인론은 현모양처의 경제 실천과 연속선상에 있음에도 여성의 역할과 자산 규모가 커졌을 때 발생하는 성별화된 낙인과 폄하가 무엇인지를 보여준다”고 말한다. “대중은 ‘남자인 나는 몰랐다’는 해명이 한낱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부동산 투기로 공직자인 남편의 도덕성에 흠집을 낸 여성을 공적으로 비난하고 뒤로는 ‘우리 마누라는 왜 그런 능력이 없냐’며 그 여성의 재테크 능력을 추앙하는 이중성을 보인다.”

여성주의적 관점을 차치하고서라도 한국 부동산 정책 및 투자의 흐름을 보여주어 흥미로운 책. 지금은 다자녀 가구에 청약 가점을 주지만 산아제한이 국가적 목표였던 1970년대 후반~1980년대 초반엔 공공부문 아파트 청약에서 영구 불임시술자를 우대했다. 그리하여 한때 반포주공아파트가 ‘불임시술자 아파트’로 불렸다는 사실 등 ‘집’에 대한 사적 욕망이 공적 정책과 얽히며 빚어낸 여러 에피소드를 유기적으로 제시한다.